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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MZ세대의 진보는 오지 않았다

등록 2021-09-08 18:31수정 2021-09-09 02:34

[기고] 김보경 칼럼니스트

얼마 전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한 일간지에 ‘저격’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판했다. 이 일로 진보진영 안팎이 시끄러웠다. 류 의원은 논란과 화제의 인물이다. 국회 등원 복장부터 타투 법안을 지지하는 드레스 퍼포먼스까지, 숱한 뉴스거리를 제공한다. 본인은 자신의 ‘관종 정치’에 당당하다. 진보정당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쇼는 얼마든지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과를 보자. 저토록 한 개인이 유명해지는데, 왜 정의당의 청년 지지는 이토록 낮을까. 심상정이 소리 지르면, 노회찬의 말이 화제가 되면 청년 지지율이 올라가던 현상과 왜 반대일까. 류호정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마음 둘 곳 없는 청년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유명해지는 과정에서 정작 자기 또래의 지지는 점점 약해졌던 것을 윗세대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관종 정치는 ‘함께 하는 일'을 잘하는 엠제트(MZ)세대에게 먹히지 않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특별한 쇼를 해서 그 당의 청년 지지를 이끌었던 게 아니다.

류 의원의 행보가 진보 내부를 분열시킨다는 점도 문제다. 87년 민주화 이후 어쨌든 진보정당의 영역은 항상 존재한다. 정의당이 ‘이제부터 진보 안 해’라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일정한 지지층이 있다. 그런데 내부가 분열된다는 건 숨만 쉬고 있어도 존재하는 핵심 기반이 약화되는 일이기에 더 치명적이다.

류 의원의 민주노총 저격이 왜 시끄러운가. 국민건강보험공단 단위 노조에서 벌어지는 노-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민주노총 중앙의 무능을 비판할 수도 있다. 몇몇 정규직 노조가 보여주는 이기적인 행태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류 의원의 비판은 사실도 방법도 틀렸다. 민주노총은 청년세대의 공정을 내세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이들을 옹호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이 노-노 갈등이 민주노총만의 책임인가. 본인은 ‘인국공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규직화를 반대했던 청년들을 어떻게 진보정치의 지지자로 바꿀 수 있는가. 이런 어려운 과제를 두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있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판할 일이 아니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있을지라도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비판은 구진보와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결별하는 일이다.

이제 청년의 지지도, 전통적 진보진영의 지지도 못 받는 정치가 한국의 대표 진보정당의 얼굴이 되었다. 이 현상의 결론은 무엇인가. 류호정 현상은 정치의 예능화, 즉 탈정치화다. 이 탈정치야말로 진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막아야 하는 것이다. 진보는 기본적으로 거악(巨惡)과 싸우는 존재다. 가진 거 하나 없으면서 국가와 싸우고 자본과 싸운다고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지지를 호소하면서 내놓는 대가는 바로 ‘진짜 삶’이다.

분명히 말해야겠다. 퍼포먼스 정치, 이벤트 정치는 문제다. 홍대 거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일하는 청년 대부분이 타투를 하고 있다. 바리스타를 하려면 타투를 안 하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런 시대에 왜 그러한 방식으로 타투법 지지를 해야 할까. 청년 정치인이 국회에서 발언할 때 진짜 타투를 잔뜩 한 팔뚝을 휘두르고, 노동자 멜빵 청바지가 아니라 하이힐을 신고도 배달노동자들의 집회에서 같이 뛰어다니면 그만이다. 나의 진짜 삶의 모습으로, 모두의 삶을 바꾸는 일에 나서면 그게 호감을 얻고 세상을 바꾸는 단단한 지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시국이 시국이다. 불평등은 극심하고, 플랫폼 자본주의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큰 적과 진짜로 싸워야 할 시간이 왔는데, 정치는 퇴행하고 있다. 이 시국에 진보정당의 두 청년 의원 중 한 사람은 퍼포먼스로, 한 사람은 바른말 고운 말 쓰기로 상징되는데, 이래서야 진지하게 배틀 한번 붙어볼 수 있겠는가. 진보정당의 세대교체에 ‘실패’ 외에 무슨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류 의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에 신경쓰지 않겠다 했다. 유명세로 지역구 의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의 새 기반이 될까. 새로운 세대의 진보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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