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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젊은 꼰대’가 되고 싶진 않아

등록 2021-09-23 18:59수정 2021-09-24 02:31

신민정|법조팀 기자

법원으로 출입처를 옮기기 전 산업부에서 백화점 같은 소매유통업계를 취재했다. 그 시절의 나는 트렌드의 최전선이라는 유통업계에서 홀로 빈 몸으로 서 있는 것 같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유통업체들은 요즘 제일 유행하는 음식, 줄 서서 먹는다는 식당, 내 또래인 엠제트(MZ)세대에게 최고 인기라는 브랜드를 유치했다고 매일같이 보도자료를 보내줬다. 그중 내가 먹어봤거나 사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 태반이어서, 자료를 읽을수록 ‘이게 정말 유행이라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기자였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자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평소 생활 패턴은 ‘트렌디’와 거리가 멀다. 절친한 친구의 말을 빌리면 “우리네 아버지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집 앞에는 매일 아침 <한겨레>를 포함한 신문 3개가 배달된다. 출근 전 간단한 요깃거리로 아침을 때우며 구독 중인 신문들을 훑어보고, 출근해서는 아직 읽지 못한 다른 신문들을 살펴본다. 바깥세상에선 종이신문 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유튜브를 중심으로 미디어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는데, 여전히 나는 유튜브 시청 시간보다 기사를 읽는 시간이 더 길다. 입맛은 한술 더 뜬다. 이따금 신문사의 몇몇 동기와 저녁을 먹을 때는 회사 근처 유서 깊은 평양냉면집에서 만나 냉면 육수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한번은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는 동기를 보러 갔는데, 동기가 추천해준 장어구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물총탕에 복칼국수로 해장을 하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유일한 아쉬움은 세종시의 ‘히트상품’이라는 누룽지 삼계탕을 먹어보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네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너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래.” 어느 날 신문사 선배에게 ‘왜 이렇게 내 나이에 비해 빨리 늙어가는 느낌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니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취재원 가운데 40·50대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었다. 떠올려보면 실제로 기자들이 주로 접하는 취재원들은 40대 이상이 많다. 정부 부처든 공공기관이든 기업이든, 언론을 상대로 자신이 속한 곳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쌓은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기자들을 잘 설득해서 부정적인 기사가 나갈 가능성은 낮추기 위해서다. 교수, 법조인, 연구원같이 오랜 시간 전문지식을 축적해온 취재원의 나이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선배의 말처럼, 나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나보다 10∼20살 많은 취재원과 주로 대화를 나누고, 가끔은 함께 식사하거나 차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취향도, 태도도 나도 모르는 새 그들과 닮아갔던 것 같다. 사회에서 규정한 나의 물리적 나이는 청년인데 내가 접하는 세상의 나이는 그보다 조금 더 들어 있었다.

가끔 걱정도 된다. 실제 나이도, 경험 수준도 30대에 불과한 내가 내 또래의 시각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4050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지, 요즘 말하는 ‘젊은 꼰대’가 바로 나인 건 아닐지, 그리고 나보다 경륜이 풍부한 취재원의 말에 압도되어서 기사를 쓰고 있는 건 아닐지 하고 말이다. 거창한 고민 같지만, 해법이 특별한 데에 있을 것 같진 않다. 갑자기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식당을 찾아다니거나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다닐 수는 없다. 그저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취재원의 말에만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고,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편견 없이 취재하고,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해보는 수밖에. 그것이 조로해버린 30대 기자가 ‘슬기로운 기자생활’을 위해 해나가야 할 일일 것이다.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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