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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의 코로나 위기 대응이 주는 시사점

등록 2021-10-03 17:47수정 2021-10-04 02:04

[시론]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느 사회든 전쟁이나 재난처럼 전면적 위기에 직면하면,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전 여론조사에서 65%의 미국인이 대규모의 구제안을 지지했는데, 취임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79%의 미국인이 추가적인 현금지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런 국민 정서의 변화는 정치권을 움직였다. 미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불과 1년 사이에 무려 5.1조달러(약 6천조원)를 위기 지원비용으로 지출하였다. 지난 40년간 탈규제와 작은 정부를 지향해왔던 미국 정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로,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비춰볼 때 예외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과감한 예산정책을 보면, ‘슬리피 조의 반격’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무기력하고 무능한 조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씌워 자신만이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로부터 미국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집권한 뒤 바이든은 이전의 신중한 태도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신속하게’ 사회정책 예산을 수립하였다. 또한 상원 예산위원장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호흡을 맞춰 코로나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예산결의안의 형태로 통과한 ‘3.5조 메가 법안’(3.5 trillion mega bill) 혹은 ‘사회지출 법안’은 1930년대 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과 1960년대 복지폭발을 가져온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의 맥을 잇는 미국식 진보주의 정책의 정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돈으로 4천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사회정책 예산은 주로 상병수당, 저소득 근로자 소득공제, 아동 세액공제, 3~4살 아동의 무상보육, 근로가구 아동 돌봄서비스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바야흐로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 이후 시장에 짓눌려왔던 국가가 코로나 위기와 함께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코로나 위기 대응은 우리나라에 어떤 함의를 줄 것인가? 첫째는 위기 국면에서 ‘국가의 귀환’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바이든 정부는 국가의 책무를 강화하는 진보적인 노선을 채택하였다. 물론 이러한 경향에는 현금지원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강화 사업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초기 미 정부의 강력한 ‘이동제한 조치’나 백신 수급·접종 과정에서 나타나듯 개인의 일상적인 삶에 국가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둘째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지원을 신속하게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을 포함한 저명한 경제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행정 관료 대부분이 재난지원금이 많아서 발생하는 위험보다 부족해서 발생하는 위험이 크다고 주장함으로써 바이든 정부의 확대 재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5.1조달러 이외에, 약 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인프라 법안(1조달러, 2021년 8월)과 3.5조 메가 사회지출 법안을 합치면 코로나 위기에 따른 대응 자금 규모는 무려 9.6조달러에 이르게 된다.

셋째, 부자증세를 과감하게 시행한다는 것이다. 최고 소득세율을 현행 37%에서 39.6%로 올리고, 특히 연간 100만달러 이상의 자본이득 세율을 현행 20%에서 39.6%로 큰 폭 상승시켰다. 대기업 법인세의 최고세율 역시 현행 21%에서 28%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 부채를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지출을 늘리는, 재정적으로 책임감 있는 정부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정치권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행정부는 이를 충실히 집행하는 구실을 수행한다. 미국 상·하원과 백악관에서 결정한 재난지원금에 재무부가 반대해서 축소되거나 연기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차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100% 보편지급하자는 집권당과 하위 70%만 선별지급하자는 기획재정부 간의 갈등이 있었다. 결국 신속집행이 핵심인 긴급지원금이 5개월이나 끌면서 하위 88%라는 어정쩡한 수준에서 타협이 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는 정책 결정을 하는 정치권과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처 사이에 명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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