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경제팀 기자
우리 엄마는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 그러니까 당신의 시어머니를 “정말 좋은 분”이라 평가한다. 웬만한 며느리는 하나씩 지녔을 시어머니 뒷담홧거리도 엄마에겐 없다. 시집살이도 고부갈등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엄마가 부당한 차별을 당한 적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명절만 떠올려봐도 할머니와 엄마, 큰엄마들은 모두 ‘부엌데기’가 되어 집안 남자들이 술판을 벌일 때 수시로 안줏거리를 내놔야 하는 신세였다. 엄마는 여태껏 “우린 옛날 사람이잖아”라는 말로 그 세월을 눙쳐왔다.
그런 엄마가 이번 추석, 느닷없이 며느리 신세를 푸념했다. 최근 엄마가 푹 빠진 인스타그램에서 젊은 며느리들의 명절 사연을 만나면서부터다. 시어머니가 자기만 부려먹길래 남편한테도 일 시켰다가 혼이 났다는 하소연, 외려 남편이 시부모에게 한소리 해줘서 고마웠다는 일화, 명절에 대리효도를 요구하는 남편을 참교육한 자초지종, 신혼 때부터 합리적인 명절 규칙을 정해 지키고 있다는 부부의 모범 사례, 여기에 사이다 댓글까지. 평등을 쟁취하려는 며느리들의 투쟁기를 일일이 내게 전해줬다.
이젠 시부모 모두 돌아가셔서 ‘탈며느리’ 한 지 오래인 엄마는 인스타그램의 며느리 알고리즘 속에서 공감하고 분노했다. 명절에는 ‘친가 먼저, 외가는 나중’이 불변법칙인 줄 알았던 엄마는 요즘 젊은 부부들이 명절 방문 순서를 번갈아 바꾼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처음엔 엄마가 뒤늦게 페미니즘을 배워 한풀이를 하는 줄만 알았다. 새내기 페미니스트가 귀여워 속으로 킥킥댈 즈음 엄마가 물었다. “우리 때는 그래도 그냥 살았는데 너는 아마 뒤집어엎겠지?”
뒤늦은 분노가 아니라 때 이른 걱정이었다는 걸 그제야 나는 알아챘다. 결혼 31년차 엄마가 아니라 싱글인 내 이야기였다. 엄마는 과년한 딸을 사연에 대입해보며 생각했을 테다. 당신께서는 차별인 줄도 몰랐던 일들을 딸이 견뎌낼 리 만무하다고. 어쩌면 딸이 진보 일간지 기자랍시고 시가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대면 어떡하나 하는 심려도 좀 섞였을지 모른다. 엄마는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사위와 사돈을 상대로 이미 ‘가드’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만으로 서른살인 나는 언제쯤 부모님의 ‘결혼 압박’이 시작될까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라는 압박보다 ‘불평등한 결혼에 대한 걱정’이 먼저 당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보통의 90년대생 여성들처럼 나는 가정과 학교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다’고 배웠고 평등의 감각을 익히며 자랐다. 내 부모님은 언제나 ‘세상에 여자가 못할 일은 없다’고 가르쳤는데, 운 좋게도 지금껏 그 가르침은 크게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진 지금에 와서 엄마가 사실 그 가르침이 현실과 다르다고 자인하는 것만 같았다. ‘딸의 결혼’을 행복한 상상으로 채우지 못하는 엄마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져 찡했고, 이런 와중에도 ‘결혼 안 함’이라는 선택지가 엄마에게 없다는 사실에 조금 갑갑해졌다.
난 아직 결혼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엄마 세대의 많은 여성과 달리 나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독립할 수 있고, 내 관심사는 일이라 결혼이 꼭 필요하진 않다. ‘언젠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고 싶다’며 막연한 미래로 생각하지만,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여성은 187분, 남성은 54분(2019년)이라는 통계를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미리 ‘가드’부터 올려야 할 일이라면 ‘안 하고 말지’ 싶기도 하다. 젊은 여성 둘 중 하나는 결혼 생각이 없고 그 이유가 “그냥”인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애석하지만 여전히 딸 가진 부모는 딸의 결혼을 떠올리기만 해도 약자가 되는 모양이다. ‘세상에 여자가 못할 일은 없다’며 내게 용기를 가르쳐준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알려주고 싶다. ‘결혼 안 함’의 선택지를 손에 쥘 때, 그래서 결혼이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의 문제가 될 때 비로소 평등한 결혼을 찾아볼 수 있다고. 그래야 딸 가진 부모와 달리 그 딸은 약자가 아닐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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