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ㅣ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매일 해가 뜨거나 지고 나면 사람 키보다 큰 풍선을 날려 보내는 곳이 있다. 아침을 일찍 맞는 포항에서도, 저녁이 늦게 오는 백령도와 흑산도에서도 날아오른다. 간혹 모진 바람이 하늘로 오르는 풍선을 낚아채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의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거행된다. 지구 전역에서 900개 이상의 풍선이 동시에 날아오른다. 외계인이 이 모습을 본다면, 지구인은 무얼 축하하려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사불란하게 그런 의식을 벌이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풍선에 매달린 센서는 주변 대기의 기온, 기압, 습도를 측정하여, 무선으로 수초마다 한번씩 지상국에 관측 수치를 보내준다. 바람을 따라 풍선이 밀려간 좌표를 지피에스(GPS·위성항법장치)로 추적하여 풍향과 풍속을 잰다. 우리 몸의 건강을 의사가 진찰하듯이, 대기의 상태를 문진하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기상위성이 구름을 감시하고 땅 위에서는 기상 레이더가 강수를 탐지한다 해도, 풍선을 타고 대기를 비집고 올라가 공기의 체취를 직접 느껴봐야 대기 상태를 온전하게 분석할 수 있다.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나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 보더라도, 피부를 째서 조직검사를 해봐야만 암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때는 연에 관측기기를 매달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센서를 단 고무풍선이 등장하면서 더 높은 곳까지 대기를 관측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관측값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풍선이 고공에서 터지면 낙하산이 펴지면서 떨어지는 기기를 회수하여 관측값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파 통신기술이 등장한 1930년대에 이르러 관측 센서의 측정 수치를 현장에서 무선으로 보내주는 풍선 관측기술의 골격이 갖추어졌다.
이 시기는 가히 풍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하트나 별을 비롯한 다양한 모양의 풍선이 대량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풍선에 프로펠러 엔진을 매달아 날아다니는 비행선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동안 정찰과 폭격에 쓰였던 비행선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상업 항공분야로 발 빠르게 옮겨갔다. 독일에서 제작한 그라프 체펠린은 알루미늄 재질의 뼈대 안에 풍선을 부풀려 유람선 타이태닉호에 견줄 만큼 동체를 크게 키웠다.
1929년 8월 체펠린이 지구를 처음 일주한 뒤, 두 달도 안 돼 증시가 폭락하며 세계 대공황이 촉발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당시 끝을 모르고 덩치를 키워가던 제조업이나 사람들의 과시적 소비 성향, 그리고 풍선 산업에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다. 체펠린에 불운한 사고가 찾아온 뒤 비행선도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거품이 터진 경제와 운명을 같이했다. 1937년 번개가 치는 먹구름을 뚫고 미국 도시에 접안하던 체펠린에 불이 붙어 폭발한 것이다.
풍선이 올라가는 걸 보면 날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지금은 도처에서 열기구 관광을 할 수 있지만, 기상 조건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도에 따라 다른 바람에 실려 간다 해도, 난기류가 심해지면 위험이 따른다. 열기구는 대기가 안정하여 비행 안전이 확보되면서도 주위가 훤한 일출이나 일몰 때 주로 비양한다. 복병은 안개다. 대기가 안정할수록 야간에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며 수증기가 쉽게 응결한다. 열기구로 유명한 관광지에는 대기가 건조한 곳이 많다. 습도가 낮아 안개가 잘 끼지 않아 좋은 시정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옛 격언처럼 가장 어두울 때, 새벽이 가장 가까이 와 있는 법이다. 땅은 차갑고 바람도 잦아들어 대기도 숨을 죽인다. 대기가 안정하여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움직일 힘조차 없는 바로 그때, 열기로 채워진 풍선은 더 큰 부력을 받아 떠오르는 태양처럼 힘차게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