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미|이슈팀 기자
“이제 당신들의 인생은 불행해질 거야. 기자를 계속해도, 그만둬도 앞으로 삶은 내리막길이 되겠지.”
눈앞의 중년 남성은 술이 한껏 오른 얼굴이었다. 맨 정신이었던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으, 진짜 뭐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숨기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게 이 술자리의 청자들은 입사한 지 한달도 안 된 신입사원 4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점에서 기자가 된 지 20년을 훌쩍 넘긴 그는 마저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가치 있는 방식으로 불행할 수 있겠지.” 당시엔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꽤 인상적인 ‘선배의 말’로 남은 모양이다.
과거를 떠올렸던 건 최근에 회사가 신입 기자들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먼저 입사한 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선배들은 나한테 “너도 후배 들어오면 그렇게 해”라고 말해주곤 했다. 일단 ‘기자 일 힘들겠지만 보람도 많으니 앞으로 잘해보자’를 저렇게 말하는 명언 제조기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고. 그것 말고도 내가 봐왔던 선배의 업무는 하나같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후배들에게 늘 밥과 술을 사는 것은 물론, 자기 일은 일대로 하면서 횡설수설하는 내 말의 핵심을 귀신같이 파악해서 기사를 발전시켜주고, 또 후배가 방황하는 것 같으면 고민 상담도 해주고.
하지만 나를 가장 큰 고민에 빠뜨렸던 일은 따로 있었다. 기자 사회의 유구한 전통인 ‘선배 들이받기’였다. 선배들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자신보다 20년은 회사를 더 다녔을 국장, 혹은 데스크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세게 항의했다. 때로는 위계에 짓눌려서 눈치만 보고 있는 후배를 위해서. 앞으로 나도 선배들이 가르쳐준 대로 해야 할 텐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선배들을 말로든 글이든 들이받는 상상을 하자니 영 심란했다. 썩 자신이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고민이 깊었기에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박장대소하자 나는 다소 당황했다. “지금 삼국지, 아니 무슨 무협지 찍어요? 거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장해요?”
친구는 만약 다른 회사였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로 정리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 집단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기자들은 그 정도로 끝날 사안을 ‘들이받았다’라고 표현하는 등 쓰는 어휘가 지나치게 비장해 보인다고 했다. 또 자신이 느끼기엔 언론사의 조직 문화는 일반적인 회사와 달리 ‘끈끈한 수직관계’로 보인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런 비장한 표현들이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먼저 입사한 자는 ‘후배가 들이받았다’고 여기고, 그보다 늦게 입사한 자도 윗사람에게 들이받는 걸 각오하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과거엔 이 정도만 돼도 수평적인 조직 축에 속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조직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언론사보다 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과 단체도 셀 수 없이 늘어났을 테다.
해서, 나는 어깨에 좀 힘을 빼기로 했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비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비장함에 취해 산다면, 개개인이나 집단 모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든다.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려면 ‘끈끈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거나, 혹은 이를 넘어서는 ‘산뜻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곳으로 변해야 할 테니 말이다. 여담으로, 이 업계에 들어온 이상 뭘 해도 불행할 거라고 예언한 선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뒀다. 최근에 바람결에 들려온 소식을 듣자 하니, 2년 전 신입에게 했던 말과 달리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괜히 비장하게 살 필요가 없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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