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소련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방과 경제협력, 문화 교류를 강화했다. 서구 사회는 핀란드를 사회주의 소련의 첩자라며 비난했고 소련은 자유세계의 앞잡이라며 핀란드를 의심했다. 동서 냉전 사이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핀란드는 안간힘을 썼다.
김현아ㅣ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여행학교 대표교사인 관계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어느 여행지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아이들과 여행을 하려는데 어디가 좋을지 추천 좀 해주세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대답을 하려고 여행한 곳들을 떠올리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풍경이 펼쳐진다. 이과수 폭포,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언어로도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 인간의 소리를 제외하면 완벽한 침묵이 흐르던 세렝게티의 한낮, 온몸을 휘젓고 관통하던 몽골의 바람, 전쟁의 기억과 기억의 전쟁이 맞물리고 엇갈리던 베트남…. 어느 곳이든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있으랴. 일정과 예산에 맞춰 두세 군데 여행지를 소개하고 말미에 늘 덧붙인다. 핀란드에도 꼭 가보세요, 참 좋아요. 다시 질문이 되돌아온다. 핀란드? 핀란드엔 뭐가 있죠?
핀란드엔 사우나가 있다. 그리고 호수가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수영을 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사우나로 뛰어든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훅 끼쳐 온다. 으으으으 소리가 절로 나며 온몸이 녹작지근 풀어진다. 참을 수가 없도록 뜨근뜨근 몸이 달아오르면 다시 호수로 풍덩 뛰어든다. 그야말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넘나든다.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세포와 근육들이 유연해진다. 번다한 세속의 잡념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된다.
또 핀란드엔 숲이 있고 가지가지 베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만인의 권리’가 있다. 만인의 권리는 누구든지 환경법에 따라 보호되는 몇 가지 종을 제외하고는 야생의 베리, 버섯 및 식물을 자유로이 채집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만인의 권리는 국외에서 온 방문객에게도 적용이 된다. 덕분에 그해 여름 우리는 입 주위가 까매지도록 원 없이 베리를 따 먹고 향긋한 버섯수프를 매일 끓여 먹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모독하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토지 소유자의 허가 없이 누구나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채취할 수 있는 이 멋진 사회적 합의는 공공성의 개념이 얼마나 만인을 행복하게 하는지 실감케 해주었다.
그리고 핀란드엔 ‘헬싱키선언’이 있다. 1975년 여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동서 양 진영의 33개국 정상이 모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질서를 구축하며 대결하던 양 진영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자고 대회합을 하기에 여름의 헬싱키는 더없이 적합했을 것이다. 북극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은 마음을 선선하게 했을 것이고 백야는 묵혀온 이야기를 오래 나누기에 부족함 없는 시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평화와 인권의 새로운 데탕트는 그렇게 헬싱키에서 시작되었다. 유럽 평화사와 세계 인권사의 큰 전환이 된 헬싱키선언은 핀란드가 집요하고 치열하게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결실이다. 국가의 미래를 걸고.
핀란드 2년째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 교육의 성공비결, 북유럽 감성의 대표주자 핀란드…. 핀란드와 연관된 기사들이다. 고난과 역경 없이 성공한 사람을 볼 때처럼 샐쭉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핀란드의 역사를 알고 나면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가 되기까지 그들이 겪은 고초와 시련이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사회가 공동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공유하고 실현해내는가에 따라 비슷하게 출발하지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핀란드는 서쪽으로는 스웨덴,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독일과 마주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지정학적으로 매우 문제적인 나라들과 이웃해 있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하며 러시아가 혼란에 휩싸이자 핀란드는 이 틈을 타 독립을 선언한다. 멋진 신세계는 그러나 호락호락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 나라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 국가의 정체성과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둘러싸고 내전이 발발한다.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적위대와 반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건 백위대는 러시아와 독일의 지원을 받으며 맞붙는다. 모든 내전은 참혹하다. 핀란드 총인구의 1.2%가 죽었다. 가까스로 내전이 진정되지만 다시 소련과 ‘겨울전쟁’을 치러야 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략적으로 핀란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러시아는 1939년 핀란드에 영토의 일부를 요구한다. 당연히, 핀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진다.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핀란드는 패배한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핀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슬아슬 외줄을 타지만 결국 양쪽으로부터 번갈아 공격과 압박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다.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핀란드는 그야말로 폐허였다. 식민의 역사를 겪고 강대국들의 이권에 의해 분단되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내전을 치르고, 한반도의 역사와 너무나 비슷해 살짝 놀라울 지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소련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방과 경제협력, 문화 교류를 강화했다. 서구 사회는 핀란드를 사회주의 소련의 첩자라며 비난했고 소련은 자유세계의 앞잡이라며 핀란드를 의심했다. 동서 냉전 사이에서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핀란드는 안간힘을 썼다. 동서 냉전을 타개하는 일은 그러므로 핀란드에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과제이자 목표였다. 지정학적 저주를 푸는 열쇠는 평화적 공생에 그 힌트가 있었다. 헬싱키선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냉전의 시대를 종식하고자 하는 끈질긴 협상과 대화와 회담을 주도한 평화의 행위자들이 있었다. 핀란드는 틈이 날 때마다 동서 양 진영을 설득하고 멍석을 깔고 판을 돌리며 세계의 긴장을 해빙시키는 노력을 집요하게 했다. 핀란드의 안보와 풍요를 위해서는 세계의 평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얼음호수와 사우나를 넘나들며 키운 내공이 한몫했을 것이다.
종전선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 이는 때로 운신의 제약을 불러오지만 때로는 주변을 변주하는 힘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이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종식하고 전지구적 위기에 모든 인류가 지혜를 모으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자리가 인간의 세계를 넘어 만물에게로 확장되기 또한 바란다. 종전선언 이후에도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헬싱키가, 서울이 약자의 지혜로운 위력을 발휘하는 평화의 허브가 되기를 상상한다. 담대한 창의력으로 상상을 실현해나가고자 한 이들에 의해 평화와 정의는 수호된다.
아, 핀란드에는 산타 마을이 있다. 겨울에만 바쁠 줄 알았더니 한여름에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산타 할아버지는 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