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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스룸의 세대갈등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1-11-25 20:59수정 2022-08-22 13:50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 | 산업팀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23일 창립 33주년을 기념해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는 ‘민주화 세대의 퇴장, 언론노동의 현장 변화’다. 나 같은 일반 조합원은 이런 행사가 열리는지도 몰랐는데, 뒤늦게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고 알았다. 토론회는 요즘 각 언론사 뉴스룸에서 벌어지는 ‘세대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할 말이 많은 주제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몇몇 생각이 떠올랐다.

“젊은 기자들이 왜 파이팅 넘치는 아이템을 안 하는지 불만이 있다. 세대갈등은 물론 있지만, 지금은 세대갈등 문제라기보다 기자를 뽑는 전형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1991년 입사한 홍사훈 <한국방송>(KBS) 기자)

젊은 기자들이 “파이팅 넘치는 아이템”을 취재하지 않는 원인이 채용 방식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가 안 된다. 지금의 전형 방식이 좋은 기자를 뽑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대학 나온 그 친구들이 삼성 가듯이” 언론사에 입사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면, 30년 전 선배들이 통과한 채용 시스템이 더 문제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언론사들은 지원 자격에 학력과 나이 제한을 두었다. 그 시절 고교 졸업자 가운데 30% 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했고, 그중에서도 소위 명문대 졸업생들은 ‘차별적 채용’에서 훨씬 더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블라인드 전형이나 인턴제 등이 도입됐고, 훨씬 더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기자들을 뽑는다(물론 이 역시 한계는 있다). 백번 양보해 과거에 견줘 지금의 전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수십년간 회사에 몸담았던 선배 기자는 왜 그 긴 시간에 시스템을 제대로 바꾸지 못했나. 그러면서 ‘요즘 애들 이상해’라고 말하는 건 유체이탈 화법이다.

“선배 그룹들은 후배 그룹을 언론 기득권으로 보는 것 같다. 역사의식도 없고, 용기 있게 나서서 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보며 ‘(중략) 저분들은 정파적이야, 특정 집단과 동일시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2007년 입사한 장아영 <와이티엔>(YTN) 기자)

매체의 증가와 함께 한층 팍팍해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최근 언론 환경에 비춰보면 선배 기자들이 종종 얘기하는 ‘아름다운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가끔 정부 부처 공무원이나 기업 관계자들의 “예전 기자님들은…”으로 시작하는 각종 ‘갑질’ 증언을 듣다 보면, 내가 다 부끄럽다. 그런데 어떻게 요즘 젊은 기자들이 “언론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오히려 후배 기자들 입장에서 볼 때 일부 선배 기자들은 “역사의식”과 “용기”를 말하면서도 이따금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모습들을 보인다. 아무리 이 나라에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해도, 기자가 다니던 언론사를 관두자마자 청와대나 대선캠프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기득권이 되려는 욕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나.

“우리 세대는 약자들의 문제, 일터에서 나의 권리, 직장 내 괴롭힘이나 산업재해를 중요하게 보는데, 윗세대는 검찰이나 정치권력 같은 문제가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고 한다.”(2020년 입사한 김건우 <문화방송>(MBC) 시사교양 피디)

젊은 기자들이 검찰이나 정치권력과 관련된 의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니다. 무협소설 같은 여의도(정치)와 서초동(검찰)의 ‘파워게임’에만 집중하지 말자는 거다. 검찰개혁이 중요하다면, 인사권 문제만 쓸 게 아니라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이 빠진 검찰개혁 타령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도 선배들을 피해 다니며 단톡방에서나 불만을 떠들었지, 그 선배들의 경험이나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후배 기자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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