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농업은 행복 총량을 늘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말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끄덕였다. 수도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손뼉 치며 환호했어.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 | 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하얗게 내린 서리에 마음부터 움츠러진다. 겨울의 문턱에서 불청객인 잔기침으로 며칠째 콜록대고 있다. 잘 말려둔 파 뿌리를 달여야겠다.
어디선가 네컷 만화를 본 적이 있다. 행인이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돈벌이는 안 하십니까’ 물어보니, 낚시꾼이 말하길 ‘돈 벌어서 뭐 할 건데요’. ‘자동차 사고 집도 사야지요’ 대답을 한다. ‘그다음에는요?’ 하고 다시 묻는다. ‘여행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겠지요.’ 그러니까 대답한다. ‘그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 시골살이에 관한 귀농 청년들의 대화 자리를 지켜보았다. 농촌의 현실과 각자의 농촌관을 서로 나누는 자리였다. 진행팀은 설문조사를 통해 귀농한 이유 다섯 가지를 꼽았다. 다섯번째 이유부터 살펴보면, “도시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였다. 한 청년은 꿈꾸던 국제회의 기획을 하게 되었지만, 밤낮없이 일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잃겠다 싶어서 귀농을 했다는 거야. 그녀의 남편도 서울에서 설계를 하던 친구였는데, 잦은 야근으로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더라. 대담자는 출세해서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고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면 시골살이가 어쩌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고 맞받았지.
다음은 “가업을 잇기 위해서”라는 응답이었어. 시골 사는 부모님이 나이 드시면서, 대대로 짓던 농사를 이어가고자 하는 뜻이 가족의 누군가로 이어지는 거지. 세번째는 “가족, 친지와 가까이 살기 위해서”로, 무려 9.9%의 응답자가 꼽았다. 대담자가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되묻기도 했지. 스스로 의도한 바가 아닌데도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면, 경로를 바꿀 선택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용기를 내야 해. 그때 삶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가족과 고향에 기대는 것도 훌륭한 결정이다. 사실 돌아갈 고향과, 정 붙일 친지가 있는 사람은 다행이다. 안타깝게 그럴 땅도, 사람도 없는 이가 훨씬 많을 거야.
두번째로 많은 응답은 “농업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청년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돋보였다. 한 청년은 농부라는 직업 자체가 중요하고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부는 없어지지 않을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해서 일찍부터 귀농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단다. 식량 안보와 관련해서, 농업이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후위기로 농업의 피해가 커지겠지만, 전세계적인 위기 앞에서 농업의 구조가 달라지고 정책적 비중이 올라갈 거라는 희망적 전망도 있었지. 대화를 나누는 현장 앞에 보이는 언덕은 칡넝쿨로 덮여 있었다. 대담자는 그런 언덕조차 태양광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귀한 자원이 될 수 있다며, 시골은 기회의 땅이라고 어필하더구나. 농업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농업은 행복 총량을 늘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말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끄덕였다. 수도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손뼉 치며 환호했어.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이유는 “자연이 좋아서”였단다. 그것은 아마도 귀촌한 사람들이 응답한 것이 아닐까 가늠해본다.
진행을 하던 친구도 청년들이 귀농한 이유로는 가업을 잇기 위해서나, 도시 생활에서 느낀 회의감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보이더구나. 그 친구는 시골 생활에 어려운 점이 없고 행복감으로 충만하다고 거듭 강조했어. 엄마는 그런 말들이 낯설기를 넘어, 살짝 거북했다. 농사짓는 일이 아주 많이 힘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보상이 적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긍정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무언가 의도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포장되고 미화된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어. 너희 아빠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눴다. 괴산이 정말 살기 좋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아주 다행인 것은 그런 청년들이 이곳 괴산에 둥지를 틀고 자신들의 미래로 농업을 택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 못내 아쉬웠던 점을 꼽는다면, 개선해야 할 사항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엄마가 너무 많은 것을 그들에게 기대했나 보다.
앞서 이야기했듯, 돈 벌어 집 사고 자동차 사고, 돌고 돌아 취미 생활을 즐길 거면, 할 수 있는 지금 당장 즐기는 것도 방법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다. 날마다 다니던 길에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어 있는 꽃을 보며 애처로움에 젖는 시간도 향기롭다.
이제 너희를 맞을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렇게 일흔에는 일흔의 호흡으로 행복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