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의 부지런한 농부들은 요즘에도 바쁘다. 절임배추를 끝내고 밭에 있는 비닐을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 밭에서 잎을 다 떨군 채 오뚝하게 서 있는 콩을 베고 수확하고 있다. 알뜰한 할머니들은 콩을 거둔 밭에서 떨어져 있는 콩을 줍기도 한다. 너른 밭에서는 한말씩 줍기도 한다면서 부지런함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 | 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하얗게 내린 서리에 푸른빛을 보이던 풀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밭에는 조금 작게 커 절임배추로 선택받지 못한 푸른 잎의 배추도 덩달아 웅크려 서리를 이고 있단다. 들마루 위 막둥이도 서리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대로 그렇게 앉아 있다. 막둥이 집이 작아서인지, 집의 바닥이 더 차가운 것인지 물어볼 수도 없고, 보는 마음이 안쓰러워 눈을 마주칠라 하면 꼬리를 흔들며 벌떡 일어선다. 담요를 덮어주고 깔아줘봐도 그저 놀자는 이야기인 줄만 아는 거 같아.
아주 어렸을 적, 스케이트 타던 추억을 생각해 냈구나. 엄마는 그 이야기를 보며, 이곳 괴산에 와서 네가 삼동이(우리 집 고양이)하고 썰매를 타던 그때를 떠올렸는데 말이다. 물을 빼지 않은 논이 꽝꽝 얼어 있었지. 누군가가 썰매를 타면 좋겠다는 말에 인터넷으로 썰매를 주문했다. 앉아서 꼬챙이로 밀어야 하는 나무썰매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반가웠다. 오랜만에 타볼 텐데도 씽씽 속도를 내는 게 용했는데. 그 썰매, 어디에 있나, 찾아봐야겠다.
생협 활동 중에 그런 행사가 있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시골에서의 놀이를 체험하게 하는 외갓집 나들이라고. 체험 프로그램에는 군고구마 구워먹기, 야트막한 언덕에서 비료포대로 썰매타기,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에서 달집태우기 따위들이 있었지. 그렇게라도 아이들에게 시골의 정서를 느끼고 가슴에 품게 하고 싶었던 거야. 어쩌면 엄마들의 향수를 실낱같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욕구가 투영된 것일지도 몰라. 그나마도 요즘엔 찾아보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옛것을 잃어가는 것은 놀이 문화도 마찬가지란다. 동네 노인회장께 여쭤보았다. 예전엔 겨울에 뭐 하고 지내셨느냐고. 땔감으로 나무를 하러 다니느라 겨울에도 내내 바쁘셨다고 혀를 차시더구나. 장작을 패서 쌓아 놓아야 했고 다음해 여름에 쓸 땔감도 준비해야 했단다. 무슨 일이든 마법처럼 순간에 이뤄지지 않으니 농한기라고 하지만 다음해를 준비하는 기간이 되는 거지. 더 바빴다는 말에 놀이는 뭐가 있었는지는 꺼내 놓지도 못했단다.
괴산의 부지런한 농부들은 요즘에도 바쁘다. 절임배추를 끝내고 밭에 있는 비닐을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 밭에서 잎을 다 떨군 채 오뚝하게 서 있는 콩을 베고 수확하고 있다. 알뜰한 할머니들은 콩을 거둔 밭에서 떨어져 있는 콩을 줍기도 한다. 너른 밭에서는 한말씩 줍기도 한다면서 부지런함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이즘에 볼 수 있는 풍경이란다. 콩을 털고 정선하는 작업 또한 만만하지 않다. 제법 넓은 면적에 콩을 재배하면 농업기술센터에서 정선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한두 짝 정도의 양은 일일이 콩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한알 한알 선별하는 그 모습은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 같지만 그 지루함을 견디고 나서야 콩이 온전히 제 역할을 찾을 수 있단다.
콩 선별 작업 뒤에 수매가 끝나고 나면 동지를 전후로 마을별로 동계가 열린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면서부터 동네 어른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 식사를 즐기셨지만 언제 재개될지 현재는 암담한 상황이구나. 올해 동계도 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현재 상황이면 어려울 거 같다는 주변 의견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혜택을 받는 일도 생겼다. 너희 아빠가 정부에서 정한 정식 ‘노인’의 나이에 진입했는데, 노인회에 나오는 기금으로 개인별로 생필품을 지급하는 거야. 세탁세제를 받았고, 진간장을 나눠 주시는가 하면, 생닭을 주셔서 삼일 내내 닭국을 먹기도 했단다. 오늘은 또 화장지를 주셔서 요긴하게 사용하겠구나. 전국민 지원금이 좋은 이유를 새삼스럽게 피부로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단다. 이제 막 노인이 되어서 마을회관에 가기도 머쓱한 젊은 노인에게까지 공평하게 돌아온 개인별 지급이 주는 혜택을 희희낙락 누렸다.
그렇게 12월이 가고 나면 맞이하는 새해 벽두부터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작목별 농업인 교육이 있다. 올해 새롭게 밭농사를 시작한 만큼 새해에는 부지런히 교육을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너희 아빠처럼 유기농업 기능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작물의 특성과 재배 요령은 제대로 배워야겠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으로는 너무 많이 부족하다고 실감한 한해였거든.
그거 아니? 노래도 잘생긴 노래가 있더구나. 물론 개인 취향임을 전제로 말이다. 재즈가수 말로가 부르는 ‘에이야 홍 술래잡기’의 노랫말을 전해주고 싶다. ‘술래 하는 사람들 샛눈 뜨기 없기, 꼭지 하는 사람들 멀리 가기 없기, 에이야 홍 에이야 홍, 먼저 찾은 사람들 놀려대기 없기, 들켜버린 사람들 떼 부리기 없기, 약속대로 약속대로 가위바위보로 나온 대로 꼭 꼭, 술래 하는 사람들 앉아 쉬기 없기 꼭지 하는 사람들 아주 가기 없기’
쉽게 풀리지 않더라도, 마음먹은 대로 그대로 그렇게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