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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들은 왜 빈곤해지는가

등록 2021-12-27 18:05수정 2021-12-28 02:01

[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아기는 항상 목청껏 울어댔다. 달래려고 안아주면 더 화를 냈다. 부모와 눈도 맞추지 않았지만,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쉴 수도 없었다. 뭔가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분노를 터뜨렸다. 그때마다 벽이나 바닥에 머리를 찧어 눈 주변이 시퍼렜다. 울지 않을 때면 허공을 응시하며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바닥에 앉아 냄비 뚜껑을 몇시간씩 돌려댔다. 14개월이 되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를 만나야 했다. 자폐가 맞다면 두돌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데, 소아정신과 의사는 1년 뒤에나 볼 수 있었다.

어찌어찌 진단을 받았다. 자폐라 했다. 마음이 철렁한 순간이 지나자, 차라리 홀가분했다. 문제가 뭔지 알았으니 열심히 치료하면 될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자폐가 그렇게 많다는데 어디서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 부모 모임에서 얻은 정보는 혼란스러웠다.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심리운동치료, 재활심리치료, 감각치료, 운동치료를 모두 받아야 할 것 같기도 했고,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누구는 천연 비타민을, 누구는 복합 유산균을 권했다. 몸에 환경독소가 쌓였으니 킬레이션 요법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소아과 의사에게 물었더니 사기꾼들이라며 민망할 정도로 화를 냈다. 어른들은 한약을 지어 먹이라는데 왜 말을 안 듣느냐며 역정을 내셨고, 친척 한분은 부적을 쓰고 굿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그토록 확신하는지, 왜 불행을 당한 이들에게 외려 화를 내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 뭔가 대책이 있을 것 아닌가? 있긴 있었다. 발달장애 바우처(발달재활서비스)를 지급하는데, 그걸로 교육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액수를 보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 22만원. 그나마 6만원은 본인 부담이었다. 교육은 가장 싼 곳이 시간당 4만원. 늦어도 세돌 전에 많은 교육을 해야 기능이 좋아진다 했다. 선배 부모들에게 물어봐 일정을 짜보니 한달에 100만원은 들여야 했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나름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다. 결혼했을 때만 해도 허리띠 졸라매고 몇년 고생하면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룰 자신이 있었다. 이제 둘 중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부모가 동반하기를 기대했다. 빈곤이 그들을 서서히 삼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평균적인 발달장애인 가정의 초상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조기진단이 너무나 중요한데 의사를 만나기는 너무 힘들다. 서양은 진단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아과 의사들이 진단 및 치료를 담당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소아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한다. 수가 훨씬 많은 소아과 의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표준적인 치료 체계가 없어 진단을 받아도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그러니 비과학적인 치료가 판을 친다. 적절한 규제와 믿고 따를 수 있는 치료 일정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셋째, 경제적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최초 진단받은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은 주로 30대다. 재산형성기에 매달 적잖은 치료비를 지출하는데다, 한쪽이 직장을 다닐 수 없으므로 결국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세가지 모두 국가의 리더십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어디 가든 화려한 관공서 건물이 즐비하고, 입만 열면 재정건전성을 들먹이는 정부 부처를 보면 화가 난다. 필요한 곳에 쓰지도 않을 돈을 쌓아두면 뭐 할 것이며, 가장 절박한 국민이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판국에 공복을 자처하는 당신들은 첨단 건물에 들어앉아 뭘 하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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