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지막 날인 31일 해돋이 명소인 강원 강릉시 정동진 해변에서 많은 해맞이객이 일출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겨울로 접어들어 한파가 자주 내려오며 가뜩이나 코로나 거리두기로 우울한 일상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동지를 지나며 밤은 한껏 길어져 어둠 속에서 맞이한 차가운 공기는 유난히 냉랭하다.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석상이 묵직한 저음으로 혈기 많은 주인공을 지하세계로 불러들이듯, 냉기가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것 같다.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동토의 땅 시베리아다. 그곳에서는 햇빛이 적어, 낮에 받은 열기보다 긴긴밤 동안 빼앗기는 열이 많아 자연 냉방기가 가동된다. 강력한 대륙 고기압의 기세에 눌려 냉기는 꼼짝달싹 못 하고 지면 부근의 좁은 공간에 갇혀, 마치 외부 공기가 차단된 자동차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게다가 대륙 고기압의 동쪽 지방은 북풍이 극지로부터 매우 찬 공기를 계속 끌어들이므로 훨씬 춥다. 한낮에도 영하 30도라서 피부가 외부에 노출되면 몇분 안 돼 동상에 걸린다.
그 추운 시베리아라지만 절대온도로 치면 200도가 넘는다. 절대온도 0도에 근접하는 우주의 싸늘한 기운과 비교하면 그래도 따뜻한 곳이고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그 밑에는 용암이 꿈틀대고 불길이 뻗어 있다. 대기층을 통과한 햇빛이 동토를 덥혀 지표 온도를 높이는 동안, 대기는 지면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적외선 에너지를 조금만 우주로 내보내 열 손실을 줄인다. 연탄불로 땐 구들장 아랫목에 갓 지은 밥을 담은 밥그릇을 놓고, 식지 않도록 그 위에 이불을 덮어놓은 것 같다. 이 땅을 보온해주는 대기의 역할이 한겨울에도 따뜻한 저녁상을 내주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닮았다. 북극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얼음이 벗겨진 곳에서는, 햇빛을 듬뿍 받은 열대에서 북상한 해류가 속살을 드러내고, 대기는 바다의 열기를 끌어올려 주위에 고루 나누어 준다. 그런가 하면 온대 저기압이 간간이 지나갈 때마다 남풍이 따뜻한 공기를 추운 지방으로 실어 나른다. 대기가 있기에 이 땅은 열대에서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그런대로 살 만한 여건을 지지해주는 것이다.
하루의 일상에서 햇빛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찬바람에 빨려 들어온 한 움큼의 산소는 햇빛에 화학 반응한 식물이나 대기에서 나온 것이고, 두툼히 차려입은 외투는 햇빛을 받아 자란 풀을 뜯어 먹은 양의 털이다. 실내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열대의 태양 아래 익은 것이다. 출근길에 실내를 덥혀준 자동차의 연료는 햇빛의 힘으로 바다 생물이 만든 탄소가 해저에 가라앉아 변한 것이다.
해가 바뀌는 동안에도 지구는 서울~부산을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달려가고 있다. 다만 밤하늘을 스쳐가는 별들이 아득히 멀리 있어 그 속도를 체감하기 어려울 뿐이다.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도 케이티엑스(KTX)보다 몇배나 빠르다. 하지만 대지가 광활하고 태양이 멀리 있는 탓에, 어린 왕자가 소행성 329호에서 만났던 사람처럼 일분에 한번씩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지각이란 비교할 대상이 가까이 있어야만 눈치채는 것이 퍽이나 다행스럽다. 그렇지 않았다면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하며 이리저리 몸이 휩쓸리는 동안 어지럽고 메스꺼워 한시도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초가 되면 너도나도 해맞이를 찾아 나선다. 뭔가 새롭게 출발해보고 싶어서다. 헬렌 켈러는 마음의 눈으로 해를 보았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에세이에서, 첫날은 자신을 광명으로 인도했던 설리번 선생님을 만났다. 둘째와 셋째 날에는 아침이면 일출을 먼저 보고, 사람이 살아온 흔적과 문화의 현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꿈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매일 해를 맞는 것이 평범한 일상에 감추어진 기적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