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평화전망대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제공
박용현 | 논설위원
대장동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정영학 회계사와 통화하면서 “윤석열이는 형(김씨 본인을 지칭)이 갖고 있는 카드면 죽어”라고 말한 녹취록이 보도됐다. 아직 일방적인 발언일 뿐이고, 사실일 경우 ‘카드’의 내용이 뭔지도 봐야 한다. 하지만 맥락상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우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김씨의 관계는 이미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윤 후보 부친이 급히 내놓은 단독주택을 김씨 누나가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에 대한 유일한 해명은 ‘지극한 우연’이라는 것뿐이었다. 개를 키우기 위해 마당 있는 집을 물색했다는 김씨 누나는 그 집에 살지도 않는다. 의문투성이다. 또 윤 후보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 때 대장동 사업자에게 1천억원대의 불법 대출을 알선한 조아무개씨를 처벌하지 않은 사실도 논란이 됐다(조씨는 이후 수원지검의 재수사로 구속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윤 후보는 주임검사였고, 조씨의 변호인은 윤 후보와 검사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박영수 전 특검이었다. 조씨에게 박 전 특검을 변호인으로 소개해준 사람이 김만배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전 특검은 화천대유가 대장동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인 2015년 화천대유에 5억원을 송금하고 화천대유 고문을 지냈으며, 딸이 화천대유에 취직해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김만배씨의 ‘카드’ 발언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또 하나의 판단 자료가 된다. 윤 후보는 김씨와는 “상가집에서 눈인사 한번 한 사이”라고 했다. 이 해명의 진위는 유권자들의 후보 평가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녹취록에서 김씨가 윤 후보를 언급한 짧은 대목의 앞뒤로는 전혀 다른 화제의 대화가 오간다. 정영학 회계사가 화제를 돌려 묻는다. “참, 정신이 없으시지 않으셨나요? 윤석열 특검부터 해갖고. 특검이 아니라, 그 국감.” 녹취 시점인 2020년 10월26일은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가 그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크게 주목받은 며칠 뒤였다. 김씨는 당시 언론사에 몸담고 있었다. 근황을 묻는 정 회계사의 말에 김씨는 ‘카드’ 발언으로 답한다. 뜬금없게 들리는 대화다. 이 ‘뜬금없음’이 오히려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불쑥 드러낸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운다.
검찰이 녹취록을 검토했다면 ‘카드’의 진위 및 내용을 조사할 필요성을 충분히 느꼈을 법하다. 표현의 수위로 볼 때도 김씨가 말하는 ‘카드’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내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검찰은 조사가 이뤄졌다면 그 결과를 밝혀야 하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는 대장동 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태도를 보여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1월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사건은 업체 선정 및 사업 설계 과정의 특혜 의혹과 정관계·법조계에 대한 로비 의혹을 두 축으로 한다. 검찰 수사는 전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이른바 ‘50억 클럽’을 위시한 로비 의혹 수사는 5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했다.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누가 봐도 상식 밖인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곽상도 전 의원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검찰은 두달 만에야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4일 영장실질심사가 열린다. 김만배-정영학 대화 녹취록에는 “○○ 아버지(곽 전 의원)는 돈(을) 달라고 그래. ○○ 통해서” 등 금품 요구와 전달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까지 나오는데 검찰 수사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수사 의지를 의심케 한다. 박영수 전 특검은 지난해 11월 한 차례 소환조사한 뒤 수사 진척이 감감무소식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검찰에 몸담았던 최재경 전 민정수석이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아예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여론에 밀려 수사하는 시늉을 내면서도 ‘검찰 식구’는 최대한 봐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윤 후보 관련 발언을 조사하지 않았다면 검찰 수사가 원칙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좌우됐다는 뜻이 된다.
이와 관련해 녹취록을 내놓지 않으려고 애쓰던 검찰의 태도도 곱씹게 된다. 검찰은 이 녹취록을 결정적인 수사 증거로 사용해놓고, 정작 기소된 피고인 쪽에는 복사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복사된 녹취록이 언론에 유출돼 보도된다는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원칙에 따라 복사를 허용했다. 검찰은 왜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그토록 녹취록을 넘기지 않으려 했는지 궁금하다.
녹취록은 검찰의 수사자료를 넘어 이제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 됐다. 대장동 사건이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원칙상 피고인 쪽에 넘겨야 하는 것은 물론, 이 시점에서는 국민에게도 공개해야 마땅하다. 검찰이 선별한 내용만 공개되고, 국민의 판단이 거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선거라는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유명한 판결이 지적하듯, “언론과 공론의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진실의 파수꾼이 돼야 한다. 헌법은 공권력이 우리를 대신해 진실·거짓을 가려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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