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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용산 시대’ 말하는 권력의 자아도취

등록 2022-03-20 15:06수정 2022-03-21 09:41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현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취임 직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현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취임 직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동취재사진

[시론]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을 새 역사의 창조자며 메시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한 달 남짓한 기간에 헛돈을 펑펑 써가며 대통령실 용산 시대를 연다는 어리석고 무모한 발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윤 당선자가 보기에 청와대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작해 진보와 보수 대통령이 번갈아 제왕적 권력을 누린 전근대의 상징이다. 차제에 수치스러운 백 년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겠다는 사고는 가히 혁명적이다. 윤 당선자가 단 하루도 청와대에 갈 수 없는 사정은 새로운 공화국을 탄생시킬 원조라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독특한 소명 의식에 있다.

한없이 커진 욕망은 숱한 문제점을 보아야 할 시야를 흐렸고, 여러 의견을 경청해야 할 귀를 닫아버렸다. 정치학자인 한스 모겐소가 말한 권력의 “전략적 자아도취” 현상이다. 일요일인 20일 오전에 진행된 윤 당선자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 공식 발표를 보자. 집권과 동시에 용산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는 선명했지만 예산 조달과 국가 위기관리에 관한 문제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설명으로 퉁치고 말았다. 그가 집권한 이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할 국정 스타일의 예고편이다. 상식적으로 5월까지 국방부와 직속 기관, 직할부대, 경호처와 통신단 등 5천여명의 이사가 완료되어야 하는데 윤 당선자는 이사비용으로 496억원의 예비비만 쓰면 별 문제 없다고 말한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이사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의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느냐다. 청와대가 수십 년간 구축해온 국가 위기관리, 경호 상황관리 체계가 한 달 만에 용산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순 없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에서 혼란이 예상되는 집권 초, 가장 무능하고 불안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뒤섞이고, 순수 군사 시설인 합참의 지휘통제실과 지하 벙커를 대통령이 사용한다면 그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겠는가. 대대장의 지휘 시설에 사단장이 들어와 앉으면 지휘가 엉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군 지휘부의 고유 공간을 대통령이 침해하면 위기관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상당 부분 침해될 것이다. 이런 문제는 회피하면서 “저렴한 이사 비용”을 강조하는 윤 당선자는 아직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는 자린지 모르는 것 같다.

시민에게 개방된 대통령실 바로 옆 건물에 절대로 개방될 수 없는 국방부와 합참이 계속 함께 자리 잡을 수는 없다. 당장 1년 내에 국방부, 합참, 근무지원단, 합동전투모의센터, 시설본부, 국방홍보원, 심리전단, 사이버사령부 등이 새로 입주할 건물을 짓거나 찾아야 한다. 특수한 방호 및 보안 시설과 정보시스템을 갖춘 새 시설 건립에 국방부는 5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런데 윤 당선자는 이를 외면하며 몇 번이고 “이사비용 496억원”만 강조했다. 국방 관련 기관 이전은 까다로운 국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며, 특수정보를 제공하는 미국의 동의 없이는 동맹국의 연합지휘통제 시스템을 이전할 수도 없다. 아마도 미군은 상당한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의 대답은 “아는 바 없다”로 요약된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엉뚱하게 윤 당선자는 집무실을 광화문 외교부 청사로 옮기면 “외교부는 어디로 가겠느냐”는 친절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그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규모도 큰 국방부에는 왜 그런 자상함이 없는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눈과 귀가 꽉 막힌 권력의 자아도취는 직언할 줄 모르는 참모들과 융합되어 새로운 역사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일단 20일 발표로 용산 시대는 공식화 되었다. 새로운 정부의 모델과 권력의 질, 진화된 국가 위기관리, 공론의 거버넌스에 대한 통찰력도 없이 용산에 대해 “뷰가 좋다”, “역사적 장소다”, “소통의 시민공원이 탄생한다”는 한가한 소리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장소가 중요하다”는 막연한 말로 새로운 대통령 시대가 탄생한다는 거짓말은 더더욱 하지 말라. 정부와 권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빈곤하고,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지도자에게 있어 시민과의 소통은 기만적인 퍼포먼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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