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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스룸의 공간이 바뀐다면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2-04-08 06:59수정 2022-08-22 13:48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 산업팀 기자

얼마 전 서울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에서 3번 출구로 나가는 길에 신기한 광경을 봤다. 지난 대선 때 화제가 됐던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티브이(TV)’의 오픈 스튜디오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이 이따금 생방송 뉴스나 라디오를 진행하는 ‘속 보이는’ 스튜디오를 사옥 1층에 두는 경우는 본 적 있지만, 지하철 역사 안에 마련된 방송 스튜디오는 처음이었다. 여의도역에서 아이에프시(IFC)몰이나 더현대서울로 이어지는 길목 한가운데 큰 유리창이 뚫려 있는 스튜디오는 꽤 인상적이었다.

‘삼프로티브이’가 그 자리에 오픈 스튜디오를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금융 중심지인 여의도에 스튜디오를 얻으려 했는데 대형 빌딩보다 임대료 부담이 적은 지하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 ‘플렉스’(고가의 물건을 과시적으로 사는 소비 행태)를 하러 대형 쇼핑몰로 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튜브 채널을 알리기 위함일 수도 있다.(물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 오픈 스튜디오를 보면서 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좋아하는지 언제든 고개를 돌려 관찰할 수 있고,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 역시 ‘삼프로티브이’를 보든 안 보든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투명하게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이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에서 비롯한 생각일 것이다.

사실 요즘 이런 고민이 있었다. 세달 뒤면 <한겨레>에 입사한 지 딱 5년이 되는데, 가끔 기자가 되기 전보다 세상과 단절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라면 뉴스룸은 ‘십중궁궐’ 같달까. 언뜻 보기에 언론사는 세상의 최신 트렌드와 소식을 전달하는 곳 같지만, 어떤 면에선 변화에 가장 둔감한 곳이다. 예를 들어, 그날그날 “지면을 막는다”고 말하는 일간지의 ‘미친 속도’에 치여 살다 보니 정작 나와 동료들은 주변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혹은 매일 새로운 뉴스를 쓰는 우리가 가장 진보적이고, 앞서나간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해 <한겨레>는 독특한 점이 하나 더 있다. 핵심 독자가 50~60대 중심의 정치 고관여층이다 보니 콘텐츠에 대한 반응도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와 방향이 맞을 때 더 높다. 그만큼 회사도 관련 분야에 자원을 더 투입한다. 반면, 아무리 발랄하고 참신하더라도 주요 독자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는 기사는 덜 중요하게 다뤄질 때가 있는 것 같다. 자연스레 20~30대 젊은 기자인 나도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보다 50~60대 독자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흡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물론, 콘텐츠를 파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건 당연한 ‘선택과 집중’일 수도 있다. 다만, 여전히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핵심 독자층을 제외한, 보다 많은 뉴스 소비자들은 <한겨레>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답을 내기가 망설여진다.

어쩌면 지난겨울 ‘삼프로티브이’의 대선 후보 인터뷰가 <한겨레>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보다 더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다. 여의도역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데, 우리는 ‘저 세상’만 바라보고 있다 보니 점차 고립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이런 맥락에서 유튜브와 종이신문을 비교하며 플랫폼의 한계를 탓하는 건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합리화는 아닐까.

그래서 나는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로 붐비는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뉴스룸의 공간이 바뀌면 우리가 쓰는 기사도 바뀔지 몰라!’라는 매우 막연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삼프로티브이’의 오픈 스튜디오를 바라봤다. 이런 상상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이 일을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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