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월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프리즘] 김태규 | 정치팀장
대검찰청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폐지 입법에 반대 의견을 내놨던 지난 8일 저녁.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을 나서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자들이 의견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검사 그만둔 지 오래된 사람이고… 응? 형사사법제도는 법무부하고 검찰하고 뭐 이렇게 해서 하면 되고 나는 국민들 먹고사는 것만 신경쓸랍니다.”
윤 당선자는 지난해 3월4일 사직한 ‘직전 검찰총장’이다. 사직 전날엔 대구고·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했다. 검수완박 입법을 사퇴의 명분으로 들었던 그가 민주당의 입법 재개에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여전히 검사의 피가 흐르는 이해당사자로서 대통령까지 된 마당에 출구 없는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명분 없는 야반도주극까지 벌이는지 국민이 많이 궁금해하실 것”이라며 민주당을 직격했다. 윤 당선자가 하고 싶었던 말로, 그가 ‘윤핵관’들도 모르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한 이유가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한 후보자는 윤 당선자의 ‘스핀 닥터’(사안을 잘 비트는 홍보 기술자)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소통령’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 후보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 13일 인선 기자회견에서 그는 ‘측근 인사, 수사 공정성 훼손’ 지적에 “제가 해온 대형수사에서 인연이나 진영론에 기대거나 아니면 사회적 강자를 외압으로 봐주거나 그런 사건 있으면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있으면 갖고 와봐도 좋다”고 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검찰이 대형수사를 진행하면 ‘전설의 특수통’으로 존경받던 전관 변호사도 대형로펌이나 재벌의 앞잡이가 돼 검사들 회유에 나선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대선배 검사’는 “나중에 ○ 검사도 변호사 개업해야 할 거 아니냐”는 ‘마지막 무기’를 날린다. 이런 회유에 한 후보자는 “전 변호사 개업 안 할 겁니다”라며 청탁을 잘랐다고 한다. 전관 변호사의 엄포에 꼿꼿한 모습을 보였으니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대평가로 본인의 업무 처리가 ‘완전무결’하다고 자부하는 건 오만이다. 기소가 정당했는지는 법원의 판결로 검증되지만, 공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은 사건은 외부의 평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이, 재판 중인 자신의 지인을 선처해달라고 법원행정처에 청탁하고, 법정에 선 국회의원들에게 법원행정처가 재판 전략을 컨설팅해준
‘재판 거래’ 의혹은 엄정하게 처리됐을까. 검찰은 이들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이 사건의 최종 결론은 발표된 적 없고, 수사선상에 올랐던 몇몇은 여전히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사건 수사 책임자는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봐주기 수사 한 거) 있으면 갖고 와봐도 좋다”고 하니 이참에 물어본다. 이 사건은 제대로 처리한 건가.
한 후보자는 생활 영역에서의 논란 앞에서도 당당하다. 타워팰리스 전세 보증금은 임대차 3법에 따라 5%만 올려주고 본인 소유인 삼풍아파트 전세 보증금은 43%를 올려 받았지만 “(삼풍아파트에 살던) 기존 임차인이 마음을 바꿔 시세대로 계약을 다시 체결하자고 한 것”이므로 “임대차보호법 위반은 전혀 아니다”라는 게 한 후보자 쪽 해명이다. 결과적으로 임차인으로서 임대차 3법 혜택은 누리고 임대인으로서 법률을 무력화했지만 그저 떳떳하다. 위법 여부부터 따지는 게 법조인의 한계인데, 윤 당선자와 그의 스핀 닥터인 한 후보자도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문 대통령의 페르소나인 조국 전 장관에서 시작됐다. 오만은 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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