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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재택근무를 떠나보내며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2-04-28 15:58수정 2022-08-22 13:45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우연 | 이슈팀 기자

모든 직업인들은 자신이 하는 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하나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고소공포증 있는 비행기 조종사’ ‘피 못 보는 외과의사’ 같은 것 말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내겐 ‘재택근무’가 그런 수식어 가운데 하나였다. 태초에 선배 기자들의 주입식 발언이 있었다. “기자는 엉덩이 무거우면 안 돼. 무조건 현장이야!” 지금 자기부정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넵”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실제로 재택근무 ‘따윈’ 기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입사 1년이 채 안 됐던 2019년 여름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반깁스하고 목발을 짚었다. 당시 다니던 언론사에서는 국회를 출입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걷지 못하니 막내 기자의 지상과제인 ‘정치인 쫓아다니며 질문하기’를 할 수 없었다. 기자회견장에 앉아 다른 기자가 단톡방에 올린 정치인들의 워딩을 확인해 기사를 작성했고, 취재는 전화로만 했다. 집에서 해도 무방한 일들이었으나 인천 집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왕복 택시비 6만원을 써가며 매일 출퇴근을 반복했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감히 재택근무를 떠올리진 못했다.

1년 뒤 코로나19가 퍼지고 재택근무를 선택한 기업들이 늘어났지만 남 일이었다. ‘기자가 재택근무? 설마….’ 그런데 그 설마가 실제로 일어났다. 2020년 가을, 국회에서도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늘어났다. 까딱하면 팀 전체가 격리될 수 있으니 우리 팀도 조를 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때맞춰 국회기자단도 순번을 정해 일부 기자만 현장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풀 취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당회의는 유튜브로 중계된다. 첫 재택근무 소감은? ‘방구석에서 기사 썼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니 놀랍다.’

지난해 회사를 옮겼고 ‘언론사의 발’이라는 사회부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내 발은 여전히 방 안 책상 밑에 곱게 머물렀다. 7월이 되자 하루 확진자가 2천명대를 넘보는 수준까지 갔고(그땐 엄청난 숫자였다) 델타 변이까지 등장해 정부는 거리두기를 최고 단계로 격상했다. 팀장은 “당분간 실내에서 하는 현장 취재는 하지 말고, 야외 현장 취재도 최소화하라”는 긴급 공지를 내렸다. 다행히 대부분의 기자회견과 토론회는 유튜브로 중계돼 큰 문제는 없었다. 재택근무 첫날의 당혹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출퇴근길 지하철 1호선과 멀어져서 행복했다.

몸과 달리 마음은 서서히 불편해졌다. 기사에서 관찰과 묘사는 자취를 감추고 큰따옴표를 단 멘트만 둥둥 떠다녔다. 평소라면 충분히 내 눈으로 봤을 것도 전언으로 듣는 날이 많아졌다.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찜찜했다. 취재원과는 전화로 교류하다 보니 간혹 길에서 마주쳐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된다며 만남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취재가 힘들었다는 푸념을 넘어 지난 2년 ‘팬데믹 저널리즘’에서 손해를 본 자와 이득을 본 자는 누구일까 복기해본다. 기자 한명 없는 기자회견을 연 시민들, 집회·시위 제한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시민들은 손해겠다. 공식 브리핑이 끝나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때까지 달라붙어 질문하는 기자들이 사라진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은 내심 편했겠다. 충분히 말하지 못한 자들을 샅샅이 훑고, 더 많은 질문을 받아야 하는 자들에게는 끈질기게 물어야 할 숙제가 쌓였다.

최근 일상회복 기조가 이어지며 기자들도 속속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우리 회사도 공식적으로 재택근무를 종료했다. 살인 사건이나 대형 화재가 일어난 곳에서 동료 기자들이 조그만 단서라도 얻겠다고 아무나 붙잡고 묻는 모습을 종종 본다. 긴장되면서도 반갑다. ‘발로 현장을 찾아가 눈에 담고 손으로 기록하는 것이 기자를 기자답게 만든다’는 주입식 명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현장이 있을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문밖을 나선다. 언젠가 언론사의 재택근무는 ‘라떼’(나 때는 말이야)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혹시라도 길에서 “××신문 ××× 기자인데요”라며 말을 걸어오더라도 기자들 일상회복의 징표라고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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