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정치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은 30여년간 하원(8선)과 상원(3선)에서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한번도 당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민주-공화 양당 체제가 확고한 미국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이지만, 그가 정치 역정 내내 연대해온 정당은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버몬트진보당’이다. 샌더스의 지역구인 버몬트주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이다. 샌더스는 1981년 버몬트주 벌링턴시의 시장으로 당선됐는데, 그때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지역정치조직이 나중에 버몬트진보당으로 발전했다. 버몬트진보당은 이 지역에서 전국정당인 민주-공화 양당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굳혀왔다. 당 누리집에 올려진 당선자 명단에는 자당 소속 주의회 및 시의회 의원들과 함께 샌더스 의원도 포함돼 있다.
지역정당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당이다. 지방선거 출마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버몬트진보당은 누리집에 ‘풀뿌리 조직화에 힘을 쏟는 주민 주도의 정당’이라고 당의 성격을 소개한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다른 나라에선 지역정당이 이미 보편적인 정당 형태로 자리 잡았다. 독일에서 지난해 사회민주당의 주도로 ‘신호등 연정’(사민당·녹색당·자유민주당)이 탄생하기 전까지 내리 16년을 집권해온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의 기사당도 바이에른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이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흔히 ‘자매 정당’으로 불린다. 전국정당인 기민당은 선거 때 바이에른주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 그 덕에 기사당은 수십년간 지방선거에서 다른 전국정당들을 제치고 유력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에서도 풀뿌리 지역정당 운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선 지역정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수도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설치해야 정당 등록을 받아주는 정당법 규정 탓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몇몇 지역에서 지역정당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선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역’ 없는 지방선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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