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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확실성 시대의 핵심 질문, 왜 정책에 주목해야 하나?

등록 2022-06-20 18:29수정 2022-06-23 09:15

이창곤의 정담 _01 연재를 시작하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 부총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 부총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1차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마도 필연적으로 제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물음은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책은 어떤 경로로 탄생해 누구에 의해 주조되는가, 대한민국 정책 결정 과정에서 누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최종적으로 누가 정책을 결정짓는가?”일 것이다. 이는 국회와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 물음이다. 이제는 이 “정책의 블랙박스”를 해부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1930년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인구위기 현상이 나타났다. 독일 나치 정권은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며 신혼부부에게 돈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 정부의 결정은 달랐다. 출산과 양육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폈다. 자국의 학자 부부, 군나르·알바 뮈르달의 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의 구상은 현대 사회정책에서 사회과학적 논의가 최초로 정책에 개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정부의 정책 결정은 출산율 하락을 극복한 것은 물론 이후 스웨덴 복지의 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바탕이 됐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폭탄은 두 도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일본은 곧바로 항복했고, 한반도도 식민지 굴레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두 도시에서 최대 25만명의 무고한 시민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아이들과 4만명의 한국인도 있었다. 당시 이 결정을 미국의 해리 트루먼 행정부가 내렸다. 미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이 “정책이 본질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면 어찌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정책 현상을 연구하는 정책학을 창시한 것도 바로 트루먼 행정부의 원폭투하 결정 때문이었다.

위의 두 사례는 정책의 의미는 물론 한 국가의 정책 결정이 나라의 운명은 물론 인류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정부의 정책 결정은 한 나라의 제도로 구체화되고 이들 제도는 시민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예컨대 김영삼 정부는 1993년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금융거래를 투명하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후 그릇된 금융정책으로 기업들의 차입에 의존한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불러와 급기야 대한민국을 초유의 금융위기에 빠뜨렸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심지어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 여파로 급증한 실업자와 극빈층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2000년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강요에 따라 이뤄진 경제개혁 조처는 노동자·서민보다 금융자본의 입장을 중시해 이 나라를 신자유주의란 궤도에 오르게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흔히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의사결정”으로 정의되는 정책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때로는 시민의 삶을 극단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정책을 접한다. 복지, 교육, 산업, 금융 등 숱한 분야의 크고 작은 정책이 행정부와 국회는 물론 언론, 기업, 노동조합 등에서 논의되고 있다. 가끔은 직장 회식 또는 친구들 술자리, 드물지만 집안의 밥상 등 일상적 공간에서 오르내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이들 정책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들 정책이 나와 내 가족, 이웃 등 우리네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살피고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의 운명과 삶의 질을 좌우할 정책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주기적으로 이어진다.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의 역량 높은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산 고령화 같은 해묵은 난제와 생태위기라는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려면 ‘정책 혁신’ 또한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책 패러다임과 정책 생태계, 정책 담론은 물론 무엇보다 정책 결정 과정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정책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를 띠는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에서 “왜 우리나라 정당과 정치인들은 정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묻고 답하며 따져보아야 한다.

지난 20대 대선을 복기해보자. 국가 비전이나 정책으로 대결하기보다 “그저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좀비정치”(강준만)에서 정책의 영역은 없었다. 정책은 각 후보자의 ‘선거용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그나마 발표되거나 토론회에서 거론된 정책조차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보다 표를 얻기 위한 ‘낚시성 정책’이 적잖았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들 개탄하지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에 더 문제가 있다. 내로라하는 각 분야의 교수와 최고라고 자처하는 정책 전문가들이 여야 주요 정당의 선거캠프에 대거 참여했지만 왜 정책은 늘 뒷전일까? 때로는 발표하는 정책은 왜 그렇게 빈곤한가? 더불어 왜 시민은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정책에 무관심할까? 유권자들은 왜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에 근거해 투표하지 않는가? 이 과정에서 언론인으로서 자문해야 할 질문도 있다. “언론은 왜 선거 때마다 늘 정책 보도보다 계파싸움에만 더 열중하는가? 언론은 왜 심도있는 정책 기사를 내보내는 데 소극적인가?”

질문은 꼬리를 문다. “왜 어떤 정책은 입안되고, 또 다른 정책은 그렇지 못하는가?”, “왜 좋은 취지의 정책인데도 결과는 나쁠까?”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일련의 개혁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집회에 내포되어 있던 사회개혁의 열망을 얼마나 충실히 실현했는가?”(신진욱)란 질문 앞에 초라하게 서 있는 형국이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애쓴 정책마저 의심받는다. 무엇이 문제였나? 정책 실패였나? 정치 실패였나? 아니면 정책은 성공했지만 정치에 실패했는가? 윤석열 정부를 이해하는 데에도 가파른 정치행위만큼이나 정책을 함께 들여다볼 때 더 온전한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은 그 첫번째 잣대다.

정책을 둘러싸고 반드시 부정적 질문만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정책 환경에서도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정책연구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힘쓰는 일부 정치가와 그들의 참모, 공무원 또한 없지 않다. 이들이 이룬 결실은 실로 값지다. 이들이 고안하고 제도화한 정책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이런 맥락에서 “좋은 정책은 어떤 것이며, 이들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하며, 우리 사회에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가”도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

아마도 필연적으로 제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물음은 “도대체 대한민국의 정책은 어떤 경로로 탄생해 누구에 의해 주조되는가, 대한민국 정책 결정 과정에서 누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최종적으로 누가 정책을 결정짓는가?”일 것이다. 이는 국회와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 물음이다. 이제는 이 “정책의 블랙박스”(신광영)를 해부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들 문답을 파고드는 과정은 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다. 낡은 정책 패러다임과 담론, 그리고 대한민국 정책 참여자들의 실상과 허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문답의 과정이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고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좋은 정책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새로운 ‘정책의 정치’는 이 낡은 것들을 철저히 벗겨낼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한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필자의 모자람으로 질문은 있되 답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숫제 질문과 답이 모두 잘못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역량 있는 독자와 전문가들이 질문을 바로 세워주고 다양한 응답을 보태주기를 기대한다.

이 연재의 제목인 ‘정담’은 중의적이다. 우선 정책담론의 줄임말 정담(政談)이다. 정책과 정치를 구분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정치담론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려 마주 앉아서 하는 이야기란 정담(鼎談)의 뜻도 있다. 정치인, 정책연구자, 그리고 시민들이 제각기 둘러앉아 우리의 삶의 질을 드높일 정책 대안을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는 취지에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정담(情談)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다소 무모할 수 있는 이 연재에 많은 이들의 질정과 조언이 함께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사회정책 박사. 복지를 중심으로 사회정책 이슈를 주로 다뤘다. 기동취재팀장·지역편집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으로서 불평등과 복지국가, 생태위기 등 우리 시대의 핵심 이슈를 의제화하는 데 힘썼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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