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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콜럼버스 곰의 네번째 여행

등록 2022-06-22 17:59수정 2022-06-23 13:30

2018년 8월 지리산반달곰 ‘오삼이’(KM-53)가 경북 김천 수도산에 방사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2018년 8월 지리산반달곰 ‘오삼이’(KM-53)가 경북 김천 수도산에 방사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얼마 전 환경부가 지리산에 살던 반달곰의 서식지를 사실상 ‘비밀리에’ 확대하려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반달곰의 양봉장 습격이나 기물 파손도 증가 추세라고 했다.(2019년 14건→2020년 38건→2021년 41건)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반달곰 일부가 이미 지리산 권역을 벗어나 살고 있는 게 많이 알려진데다 대민 피해의 절대량도 그리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 치자. 반달곰이 지리산 밖으로 나가는데, 인간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오삼이’라고 불리는 케이엠(KM)-53이라는 반달곰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별명은 ‘콜럼버스 곰’이다.

2017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반달곰 한마리가 초코파이를 먹고 갔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처음에는 사육곰 농장에서 탈출한 개체인 줄 알았다. 초코파이를 빼앗긴 인부들의 신고를 받고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출동’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곰은 케이엠-53이라는 지리산반달곰이었으며, 지리산을 탈출해 무려 100㎞ 넘는 거리를 ‘비밀리에’ 온 것이었다.

공단은 케이엠-53을 ‘회수’해 지리산에 풀어놓았다. 초코파이를 먹으면 안 된단다, 너희들이 살 곳은 지리산이야.

하지만 오삼이는 인간의 허를 찔렀다. 불과 보름 만에 수도산에서 발견돼 재포획된 것이다. 왜 이 반달곰은 자꾸 수도산으로만 가는가? 거기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논쟁을 해볼 만도 했는데, 어쨌든 안 돼, 너희들이 살 곳은 지리산이야.

2018년 5월이었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 기사가 ‘반달곰 같은 걸 친 거 같다’고 제보를 해온다. 이번에도 오삼이였다. 공단은 석달 뒤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야생반달곰으로선 세계 최초로 복합골절수술을 받은 오삼이는 수도산에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하니, 수도산으로 가렴.

나는 그것이 역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달곰 개체의 ‘의지’를 존중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오삼이는 몸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고, 인간은 그 요청에 응답했다. 반달곰은 무조건 지리산에 살아야 한다는 원칙도 오삼이로 인해 폐기됐다.

지리산반달곰 복원사업은 2004년 시작됐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극소수 서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러시아 등에서 들여온 반달곰을 풀자는 아이디어였다. 지상과제는 ‘개체수 늘리기’였다. 이를테면 지리산에서 근친상간이 되지 않는 최소 개체수를 목표로 설정한다. 반달곰을 집어넣는다. 적응 못 하는 곰은 실패로 보고 회수한다. 탈출하는 곰도 회수한다. 인간이 만든 규칙을 어긴 곰은 모두 회수한다.

그런데 오삼이가 인간의 규칙을 넘었는데도 그의 의사를 따라준 것이다. 더불어 인간은 동물의 행동에 자신의 행동을 맞춰 조율했다. 공단은 오삼이의 새로운 삶터를 인정하고, 주민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전기 울타리 등을 설치했다.

오삼이는 개척자였다. 다른 반달곰들도 오삼이의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공단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지리산반달곰은 총 79마리인데, 이 중 오삼이를 포함해 4마리가 지리산 밖에 산다. 반달곰이 지리산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환경부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리산의 먹이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적정 수용 개체군은 56~78마리(최적 64마리)다. 서식지가 반달곰으로 꽉 찼고, 수컷들은 번식을 위해 밖으로 나간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반달곰의 행동을 집단적 종의 ‘생태’로 일반화하여 설명하지만, 사실 개체는 생태를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청소년이 됐으니 ‘번식해야겠다’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듯이 말이다.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에게는 세계와 조우, 감각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다수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개척자 오삼이를 필두로 다른 곰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리산을 떠났다. 반달곰의 서식지를 백두대간으로 넓힌 것도, 반달곰 복원사업이 세계적인 보전사업으로 이름난 것도 이러한 동물들의 도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가 만든 남극 다큐멘터리 <세상 끝과의 조우>에는 외톨이 아델리펭귄 이야기가 나온다. 카메라는 먹이 사냥을 하러 바다로 줄지어 가는 펭귄 무리를 비춘다. 그런데 펭귄 한마리가 대열에서 빠져나오더니 설원의 산맥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남극의 대륙에는 먹을 게 없다. 그런데도 펭귄은 걷고 또 걷는다. 사람이 잡아다가 무리 속에 넣어도 그런 펭귄은 다시 혼자 길을 떠난다고 한다.

오삼이는 지금 네번째 여행에 돌입했다. 이달 초 경부고속도로를 건너 경북 상주의 백화산을 넘었다. 외톨이 펭귄과 고독한 반달곰이 역사를 바꾼다. 오삼이의 여행이 성공하길 빈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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