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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금, 혐오와 싸우는 자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2-07-07 18:02수정 2022-08-22 13:44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한 명단이 담긴 게시물이 세워져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한 명단이 담긴 게시물이 세워져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우연 | 이슈팀 기자

“기자님은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취재 도중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가 식사 자리에서 물어왔다. 며칠째 사람들에게서 받은 질문이라곤 ‘오늘 저녁 뭐 먹을 거냐’ 같은 것뿐이었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답을 주저하자 그가 침묵을 끊어줬다. “제가 최근에 청년들 대상으로 이 질문으로 앙케트 조사를 해봤거든요. 가장 많이 나온 답이 ‘혐오’였어요.”

확실히 몇년 새 ‘혐오’가 사회문제가 됐다는 것에 동감한다. 혐오시설과 같은 단어로만 접하던 혐오가 이제 모든 소수자에게 붙어도 어색하지 않다.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이주민혐오’, ‘장애인혐오’, ‘노조혐오’, ‘난민혐오’….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노력 없이 떼쓰는 집단’이라는 손가락질이 따라붙는다.

올해 쓴 기사를 찬찬히 돌이켜보니 혐오에 맞서고 연대하는 이들에 관한 기사가 여럿 눈에 띄었다. 여러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하기 일쑤인 트랜스젠더에게 친화적인 의료공간을 만든 성형외과 의사, 성소수자가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데 성공한 성공회대 학생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지각한 직원의 근무기록을 ‘연대’로 기재하겠다는 회사 대표, 에스피씨(SPC)의 노조 파괴에 맞서 파리바게뜨를 불매하겠다는 대학생들, 늘어나는 노키즈존 카페에 맞서 ‘예스키즈존’을 내건 카페 사장까지. 대단한 활동가라서가 아니라, 그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마음속 정의로움을 꺼내 외칠 용기가 부족했기에, 냉소하고 조롱하는 대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함께 고양됐다.

이제는 혐오뿐만 아니라 ‘피시(PC·정치적 올바름)주의자’라는 조롱과도 싸우고 있다는 한 취재원의 말을 들었다. 자신이 나온 기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져 ‘혼자 정의로운 척하는 사람’이라는 욕을 먹고 있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마침 ‘피시충(PC+벌레) 인터뷰하니 좋냐?’라는 누군가의 메일을 받았을 즈음이었다. 과도하게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다가 자신만 옳다는 독단에 빠지고,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자의 처지를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말이 ‘피시주의’라는 말로 뭉뚱그려 비판받는 상황은 의아하다. 이미 몇몇 유명인들은 전장연 후원 사실을 알리며 장애인 시위에 연대하자는 글을 올렸다고, 난민 차별에 반대한다고 피시주의자라는 욕을 먹었다. 라벨링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2010년대 초반 반값등록금 시위에 나갔다가 친하지도 않은 학교 사람에게서 빨갱이 소리를 듣고 상처받았는데, 기껏 목소리 낸 시민들이 그런 말에 위축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브리타임’에 쏟아내는 혐오와 폄하, 멸시의 언어들은 과연 이곳이 지성을 논하는 대학이 맞는가 회의감을 갖게 한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는 학내에서 시위해온 청소노동자를 고소한 일부 학생들을 비판하며 수업계획서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말처럼 아직 내 눈에는 너무 피시해서 문제가 된 사례는 보이지 않고 너무 혐오해서 문제인 것이 차고 넘친다. 정말 피시주의자들의 엄숙주의로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면 제보 좀 부탁한다. 그 전에는 혐오에 맞서겠다는 시민들을 더 열심히 만나겠다. 마침 지난 6일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의 옆에는 청소노동자 집회를 지지하는 3000여명의 명단이 적힌 팻말이 서 있었다. 지금, 혐오와 싸우는 자들이다.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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