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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 오는 수요일엔 수요시위를

등록 2022-07-12 18:26수정 2022-07-13 02:37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바로잡기 위해 결성된 한국 시민단체가 6월25일부터 30일까지 소녀상 철거 시위를 위해 독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 것이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이우연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등이 주도하는 ‘위안부사기청산연대’는 ‘위안부는 사기’ ‘성노예는 없다’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수요시위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화요일 밤이었다. 장마가 시작된 터라 며칠째 비가 쏟아졌고 내일도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수요시위에 나가봐야겠어. 열리긴 하겠지만 이렇게 비가 오니 사람들이 덜 올 거 같아. 올해 들어 가장 추울 거라는 예보가 있는 수요일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울 거라는 수요일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수요일엔 어쩐지 수요시위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수요일 아침 잔뜩 흐리긴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후 1시까지만 참아다오, 12시에 시작해 1시면 끝나니 그때까지만 버텨주면 큰 부조 하는 것이다, 중얼거리며 버스를 탔지만 웬걸 11시 반쯤 되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소용없을 정도로 내리는 장대비를 뚫고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하니, 오오 역시나, 수요시위는 언제나 그렇듯 그 자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람들이 적게 모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언제나 사뿐히, 기분 좋게 배신당한다. 명랑한 표정의 수녀님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고 결연한 얼굴의 청년들이 그 빗속에도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고 똘망똘망한 청소년들도 보인다. 한두명 외국인들과 방송국 카메라도 비옷을 입고 바삐 움직인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한 이후 올 때마다 보는 풍경이니 내가 참여하지 않은 그 수많은 수요시위도 비슷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복동, 박두리, 김순덕, 이용녀, 강덕경…. 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증언한 여성들.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양산을 쓰고 하얀 양말에 샌들을 신고, 진눈깨비 흩날리는 한겨울에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앞줄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 시위가 끝나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눔의집으로,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던 그녀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2022년 6월29일 1550차 수요시위는 그녀들의 부재 속에 진행됐다.

제가 1991년생입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께서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하시고 1992년 1월부터 수요시위를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로 서른두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연대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놀랍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취지로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문제 제기에도 일본 정부가 이렇다 할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 제가 대학교 1학년이던 2011년 수요시위가 1000회차를 맞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수요시위에 직접 참가한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앞으로도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연대발언자로 나온 오수연(언론노조 성평등위원·언론노조 SBS미디어넷지부 부지부장)씨가 노란 비옷을 입고 무대 위에서 말을 이어나간다. 31년,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팀장을 다는 나이, 31년 수요시위 역시 한 사람의 성장사만큼이나 구구절절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특히 1550차 수요시위의 주요 이슈는 베를린 미테구청의 소녀상 존치 문제였다.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건 2020년 9월. 독일의 한국 교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주도와 베를린 시민들의 힘으로 설치됐지만 미테구청은 일본 정부의 항의와 우익들의 공격에 설치 2주 만에 철거명령을 내린다. 이에 한국 교민뿐 아니라 독일의 많은 시민단체가 함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나섰고, 일본과 미국 등 국외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이후 미테구 의회는 소녀상 영구 설치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미테구청은 1년 단위로 설치 연장 허가를 받으라는 조건으로 승인한다. 지난 4월28일 일-독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다. 한 나라 총리가 다른 나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시민들이 설치한 소녀상 철거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만 보자면 베를린 미테구청 소녀상 문제는 한-일 사이 갈등으로 보인다. 일본은 과거를 성찰하지 못하는 나쁜 나라이고 한국은 그런 일본을 나무라는 정의로운 국가처럼 보인다. 나쁜 일본군과 무책임한 일본 정부, 불쌍한 소녀, 가엾은 할머니가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한국인은 일본군에 분노하고 전시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연민하는 관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거짓말'을 바로잡기 위해 결성된 한국 시민단체가 6월25일부터 30일까지 소녀상 철거 시위를 위해 독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 것이다. 이 단체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이우연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 등이 주도하고 있는 ‘위안부사기청산연대’다. 올해 1월6일 결성됐다는 이 단체 핵심 인사들은 2019년 말부터 수요시위 현장 바로 옆에서 반대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위안부는 사기’ ‘성노예는 없다’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하는 한국인들이다.

이들의 출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와 민족,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여성 살해, 혐오 범죄, 전시 성폭력과 연결돼 있다. 전쟁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계급차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며 그러므로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소수자들이 가장 참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를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은 평화의 가치와 인권, 나아가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이를 부정하는 일은 그러므로 폭력과 차별, 야만, 나아가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에 찬동하는 것이다.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세상에 공개증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국가기념일이다.

내가 일부러 (정대협에) 찾아갔어요. 나는 이런 사람인데 말을 하고 싶다. 얼굴 드러내놓고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겁 안 나는 사람 없어요. (…) 절대로 이건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분노와 결기, 떨림이 공존하던 얼굴. 그 담대함과 솔직함, 두려움을 물리치고자 하는 결연함.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본령은 그녀의 말에서 시작됐다. 비 오는 수요일엔, 바람 부는 수요일엔, 눈 내리는 수요일엔, 그러니 여러분 수요집회에.

(*미테구청과 관련한 이야기는 정의기억연대 선언문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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