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요일을 확인하면서 지구 바깥의 행성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수목금토는 태양을 도는 행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공조명으로 탁해진 요즘 도심에서 여전히 밤하늘을 수놓는 건 행성밖에 없다. 육안으로 볼 때 화성은 붉은빛이 감돌며 격렬하다면, 금성은 아이보리에 황색이 섞여 우아한 느낌이다. 화요일은 바쁜 한주의 정점으로 가는 길목이라 요란하고, 금요일은 주말에 대한 기대감으로 포근한지도 모른다. 요일이 풍기는 느낌처럼, 화성과 금성의 대기도 다른 특징을 가진 걸까? 우주로 비상한 누리호를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주변 행성으로 날아가 신세계를 개척할 수 있다는 꿈을 꾼다. 행성마다 기상 관측소가 세워지고, 매일 아침 방송에서는 세계 도시 날씨에 이어 주변 행성의 날씨가 나올 것이다.
금성에 간 예보관은 상공만 빙빙 돌며 일을 볼 것이다. “제가 나와 있는 곳은 80㎞ 상공입니다만, 기온이 높아 폭염경보가 발효 중입니다. 지표는 수은온도계가 녹아내릴 만큼 뜨거워 현장 관측은 불가능합니다. 오늘은 종일 흐리고 황산 비가 내립니다. 사라호 태풍보다 몇배나 강력한 바람이 불며, 초특급 강풍 경보가 발효 중입니다.” 화성에 간 예보관은 끝없이 펼쳐진 자갈밭 위에서 예보문을 써 내려갈 것이다. “현지 기압은 에베레스트 산정보다 더 낮아 숨이 가쁘고, 고산병에 걸릴 지경입니다. 밤에는 남극보다 몇배나 차갑고, 낮에도 한파경보가 유지되므로 동상을 입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종일 맑으나 미세먼지 나쁨입니다. 오후 한때 대기가 불안정하여 먼지 폭풍과 미세먼지 경보가 예상되므로 케이에프(KF)-94 마스크를 꼭 쓰시기 바랍니다.”
태양계가 형성될 즈음에는 금성과 화성도 지구와 유사한 환경에서 출발했을 터인데, 어찌하여 지금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선 걸까? 한때는 상상 속의 이야기로 장식하며 동경했던 미지의 세계였지만, 우주 탐사선이 현지의 척박한 기상조건을 하나둘 밝혀낼 때마다, 정작 놀라게 되는 것은 이 땅에서 당연한 듯 향유해온 지구 대기의 예외적 유일성이다.
두 행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차 있다. 우리가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로 그 온실기체다. 금성은 대기층이 두꺼워 표면의 열을 가두면서 뜨거운 행성이 되었다. 반면 화성은 대기층이 얇아 표면의 열이 쉽게 빠져나가면서 차가운 행성이 되었다. 한편 지구는 전혀 다른 길을 돌아왔다. 바다가 생기면서 광합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대기 중에 산소를 뿜기 시작했다. 산소를 호흡하는 다양한 생명체가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대기와 땅과 바다가 서로 지지하며 사람이 살기 적당한 행성으로 진화한 것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공기주머니 1만개 중의 4개에 불과한 미량인데도, 그것이 유발하는 기후변화를 보면 자연의 균형이라는 게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깨닫게 한다. 그래서 산업 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동안, 공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와 산소가 지구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면서도 일정한 농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경이롭기만 하다.
대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은 우주의 먼지가 굳어져 형성된 것이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흙과 바다에서 온 것이다. 언젠가 태양과 이 땅의 수명이 다하면 바닷물이 끓어올라 금성처럼 뜨겁고 무거운 대기가 될지도 모르고, 이산화탄소가 얼어붙으며 화성처럼 차갑고 가벼운 대기가 될지도 모른다. 지난 수백만년 동안 지구는 몇차례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크고 작은 기후변화를 겪었다. 당장은 온난화가 대세라 100년 후의 기온 상승을 고민하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이웃 행성의 이야기가 지구 대기의 운명을 말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