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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이대로 괜찮을까

등록 2022-07-28 18:05수정 2022-07-29 02:38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 지난해 7월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해양본부 인근에 해바라기가 해를 등지고 피어 있다. 안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 지난해 7월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해양본부 인근에 해바라기가 해를 등지고 피어 있다. 안산/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혜윤 | 사진뉴스팀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선택과목이었던 과학탐구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이론이나 현상이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6월·9월 치르는 수능 모의평가, 또는 수능에 관련 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을 공부하면서, 역대급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거나 새로운 은하계나 행성 등이 발견되면 따로 숙지해두곤 했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새로운 질병이 보고됐다는 소식은 과학논술이나 구술면접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커, 질병에 관해서도 자세히 공부해야 했다.

앞으로 생명과학을 선택하는 수험생들은 따로 공부해야 할 질병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기후위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오는 변화 가운데, 극지방 빙하가 녹는 해빙 현상이 있다. 빙하가 녹은 지역에서 모기떼가 창궐한다는 영상도 있었고, 빙하가 녹으면서 얼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활성화된다면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몇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16년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탄저병은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 사례로 언급된다. 당시 이 지역에는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이상고온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시베리아 탄저병 사태처럼 극지방 얼음 속에 얼어 있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되살아나면 인류를 겨냥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전염병이 4.7%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또한 빙하 속 바이러스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도 이미 나왔다. 2015년께부터 빙하에 있는 바이러스를 분리해 특성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후속 대책 소식은 듣지 못했다.

기후위기에 신경 쓰게 된 건 온열질환자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야외 취재를 하며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취재하러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를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며 학계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이보다 더 더워진다는 건데 어쩌나 싶었다. 사실 요즘 유럽과 미국의 날씨 관련 보도사진을 보면 남 얘기 같지 않다. 우리나라도 그 나라들처럼 여름 한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게 되면, 더위 스케치 사진 취재에 나섰다가 더위 먹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다.

게다가 겨울철 추위, 눈 스케치 빈도가 해마다 줄고 있다. 3년 전 사진부에 배치되고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조언 가운데 ‘잘 껴입고 다녀라’가 있었다. 사진기자로 처음 맞이한 겨울, 바지 안에 내복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지난해 말~올해 초에는 그때 내복을 꺼내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 대신 여름 야외 취재를 나간 날이면 얼굴 모공이 늘어난 모습이 확 눈에 띈다. 열감을 낮춰주는 팩을 사용하는 빈도도 늘었다.

빙하기 식물을 취재하러 강원도 양구를 간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동네에 사과 농원이 많았다. 동행한 연구원분께 ‘이 동네는 사과 농원이 많네요’라고 하니 “지구가 더워지면서 대구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양구로 이사 와 과수원을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구에서 사 온 사과를 집에서 맛있게 먹으며, 10여년 전 중학교 사회 시간에 ‘대구는 분지 지형’이라고 배우면서 대구와 그 근교지방에서는 사과를 많이 재배한다고 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속도라면 10년쯤 뒤에는 강원도 양구에서도 사과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한때 ‘한번뿐인 인생, 이 순간을 맘껏 즐겨라’는 뜻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란 말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욜로보다는 외려 그 반대로 특정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성취하는 ‘갓생’을 살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날그날 맘 가는 대로 편히 살아보니 결국엔 후회하게 되더라는 깨달음 때문이지 싶다. 한해 한해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야말로 우리에게 ‘욜로’에서 ‘갓생’으로 시급한 태도 변환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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