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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영국 바이오뱅크와 ‘우영우’

등록 2022-08-03 19:26수정 2022-08-04 04:1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유튜브 화면 갈무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유튜브 화면 갈무리

[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영국 바이오뱅크에 보관된 15만명의 유전체 정보가 발표됐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2015년 기준 40대에서 60대까지 총 50만명의 참여자 정보가 보관돼 있는 거대한 생명자원 보관소이다. 이는 참여자의 사회적/인구통계학적 정보, 생활양식, 뇌 엠아르아이(MRI) 자료, 인지 검사 정보, 시각과 청각 수준, 사망과 암 발병 정보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참여자 정보를 포괄하고 있으며 또한 혈액, 타액, 소변 등 인체 유래물도 구비하고 있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이런 참여자들의 의료 정보와 유전 정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왜 어떤 사람은 당뇨에 더 잘 걸리는지, 왜 어떤 사람은 희귀병을 앓는지, 왜 어떤 사람은 항암제 중 특정한 항암제가 더 잘 듣는지 등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있다. 개인의 유전 변이 정보와 의료 정보를 짝지음으로써 각 유전 변이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 정보를 모르는 사람의 유전 질환, 그리고 그에 가장 적합한 치료제를 예측하는 것이다.

영국 바이오뱅크는 이번에 총 15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이들 참여자에 존재하는 총 5억8500만개의 단일염기 유전 변이를 공개했다. 디엔에이(DNA)는 A, T, G, C 네개의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단일염기 유전 변이란 A에서 T로 바뀌는 것처럼, 한 염기가 다른 염기로 바뀐 경우를 가리킨다. 전세계 인구인 80억명을 다 조사하지 않고 고작 15만명만 조사해도 무려 6억개에 달하는 상당수의 유전 변이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디엔에이의 특정 부분만 읽어내는 기존 실험 기법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했으나, 디엔에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기법이 적용된 뒤 확인할 수 있게 된 유전 변이였다. 이런 유전 정보는 기존에 확보한 의료 정보와 합쳐져, 이전보다 더 깊이 있는 사람 유전학 연구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에 있는 누구나 이 자료를 분석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연구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유전 정보와 의료 정보를 확보한 자료는 전세계적으로도 희귀해 누구에게나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생물학자가 이 자원을 활용해 인간의 유전 질환을 연구하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학자들이 각자 받는 연구비로 영국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 연구를 하는 셈이다. 영국 말고 대안이 될 만한 자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 자료가 그 대안이 될 수는 없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유전 정보는 영국에 사는 사람들 것과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차이 나는 유전 정보 중 일부는 한국인에서 두드러지는 유전 질환과 질병 등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예컨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유전 정보와 건강 정보를 결합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의 자폐 대상 유전체 정보는 800명 정도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유전 정보와 건강 정보가 더 대량으로 확보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이 그 초석이 되길 바란다. 이는 한국에 사는 100만명의 유전체 정보와 건강 정보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됐다. 당장 이번에 발표된 영국의 15만명 유전체 정보는 대부분 영국 및 아일랜드계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이었으며, 나머지도 상당수는 아프리카계와 남아시아계에 그쳤다. 한국인 정보를 외국에서 확보해줄 리 만무하지 않겠나. 한국인의 건강 정보를 유전 변이 수준에서 이해하려면 한국에서 한국인 유전 정보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건강 정보와 유전체 정보를 모두 확보해 우리가 겪고 있는 유전 질환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한국인, 나아가 인류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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