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민하민은 드라마 방영 닷새 전에 ‘내 이름은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란 시를 썼다.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우영우보다 민하민이 먼저 나와 다행이다.
“내 친구들이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르고/ 내 형도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르고/ 내 엄마 아빠도 앞으로 해도 민하민 거꾸로 해도 민하민이라고 부른다”(전문, 서울양강초 3학년).
하민이는 며칠 전에 전학을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친구들에게, 또 처음 만난 나에게 잊히지 않는 방법으로 자기소개를 한 시다. 각 행의 첫 글자가 “내”고, 그다음에 오는 말이 “친구들” “형” “엄마 아빠”다. 이들은 주로 ‘나’와 관계 맺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친구들과 형이 부르는 민하민에는 느낌표가 찍혔고 엄마 아빠가 부르는 민하민에는 느낌표가 없다. 전자엔 유쾌한 놀이와 장난의 어감이, 후자엔 다정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각 행 끝만 읽으면 “부르고” “부르고” “부른다”이니 새로 전학 온 이 학교에서도 자기 이름이 이렇게 불리고 불리고 또 불리기를 바라며 자기로서는 기꺼이 이를 허락하고 환영한다는 뜻이 담긴 배치이겠다. 나는 이렇게 불리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희도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불러 주면 좋겠어.
모두 다섯번 시 쓰기 수업 중 두번째 시간. 재미난 시를 우연히 발견했다. 지난번 수업에서 가르친 시가 가지런히 적힌 공책 아래쪽에서 그것은 반짝이고 있었다. 한 행을 한 연으로 배치한 5연의 간소한 구조물인 그것은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의 보자기에 무심한 듯 덮여 있었다. 이 말을, 이 코끼리를, 이 황제를 어떻게, 누가 일으켜 움직이게 할 것인가. 어린이 시인은 먼저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만든 황제가 타는 황제 코끼리”란다. 황제 코끼리가 멋진 건 황제가 타는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멋진 코끼리 위에 황제가 있어서 황제가 가장 높은 줄 알았는데 그 황제를 자기가 만들었다니 자기야말로 얼마나 더 높고 멋진 존재인가. 그래서 다음 연은 이렇게 온다. “아주 멋진 코끼리 레고로 만든 코끼리”.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재밌어진다. 처음에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라고 했으므로 자기가 황제를 만들었어도 자기는 황제가 아니어서 이 코끼리에 탈 수가 없다. 이 불가능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꿈을 불러와 앉힌 다음 거기에 훌쩍 올라탄다. “꿈에서 한 번 타 봐야지” 하고. 그런데 꿈에서도 황제 코끼리는 황제라야 탈 수 있기에 이 시는 다시금 이렇게 도약한다. 다름 아닌 자기가 “황제가 되는 꿈에서”라고 말이다.
“황제가 타는 코끼리는 황제 코끼리// 내가 만든 황제가 타는 황제 코끼리// 아주 멋진 코끼리 레고로 만든 코끼리// 꿈에서 한 번 타 봐야지// 황제가 되는 꿈에서”
(박준영, ‘황제 코끼리’ 전문, 서울양강초 3학년).
어린이가 쓴 시 중에는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의 지도가 그려진 경우가 적잖다. 자기도 모르게 표현된 문장부호, 반복, 행과 연의 배치에는 탐색해 볼 만한 어떤 무의식이 개입돼 있는 것 같다. 민하민은 관계 속에서의 호명을 통해 반짝이는 기쁨을 찾는 것 같고, 박준영은 내면에서 하나씩 맞추어가는 건축 행위에서 은은한 기쁨을 찾는 것 같다.
“제일 친한 친구랑 싸웠다.// 이 것 저 것 예쁜 거 내가 가지겠다고”
(홍하은, ‘싸운 날’ 전문, 서울양강초 3).
1연 끝에 있는 온점이 2연 끝에는 없다. 친구와 싸운 다음 후회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하은은 그런 마음을 찍지 않은 온점에 담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