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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은전 칼럼] 고양이에게 약 먹이는 법

등록 2022-08-28 18:18수정 2022-08-29 02:40

약을 먹지 않으려는 어린 고양이와 약을 먹이려는 어른 인간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카라는 평생 약을 먹지 않는 고양이가 될 거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는 매일 물러서는 법을 익혔다. 그것은 왜인지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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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처음으로 동물이 주어인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꼭 3년 전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카라는 3개월 전에 우리 집에 왔다. 카라는 3개월 된 새끼고양이다.” 대체로 결말을 모른 채 글을 쓰는 나는 그래서 매번 글쓰기가 두렵지만 그때 느꼈던 설렘과 막막함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카라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예측이 안 되어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며칠 뒤 마감이 임박해왔을 때 떠밀리듯 쓴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었다. “나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살아보기로 했다.” 바야흐로 나의 세계가 급격히 바뀔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카라는 무시무시한 고양이였다. 사냥의 명수답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를 할퀴고 물었다. 카라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나는 초식동물처럼 지냈다. 내 집에서 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었다는 뜻이다. 나는 인간이고 쟤는 짐승인데 내가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나, 굴욕감을 느낄 때마다 예전처럼 쿵쾅쿵쾅 걸어 다니고 싶어서 한숨이 나왔다. 카라와 함께 지내는 법을 익히는 데에는 신기하게도 장애인운동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몸, 다른 언어, 다른 신경체계를 가진 존재들이 어떻게 평등하게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그 감각,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던 배제와 격리를 비장애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차별이라고 정의하는 그 전복적인 세계관 말이다.

카라가 장염에 걸려 동물병원에 갔을 때였다. 젊은 남자 의사는 일주일치 약을 지어주며 고양이에게 약 먹이는 법을 알려주었다. 고양이의 입을 벌린 뒤 알약을 최대한 목구멍 가까이 밀어 넣고는 고양이가 약을 뱉어내지 못하도록 재빨리 입을 꽉 닫아주라는 것이었다. 나로선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의사에게 말했다. “카라는 아주 사나운 고양이예요. 그렇게 했다간 제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을걸요. 그러니까 약은 안 먹여도 되죠?” 아마도 나는 그가 허허, 어쩔 수 없죠,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던 거다. 하지만 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요, 먹이셔야 합니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들었다는 듯 내 입이 딱 벌어졌다. “아! 먹여야 하는구나.” 나는 그가 동물을 위한 의사임을 새삼스럽게 떠올렸고 그게 아주 근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임감 있는 보호자가 되고 싶었으므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면 남편이 카라의 몸통을 붙잡고 제가 카라의 입을 힘으로 벌린 뒤 약을 넣으면 되나요?” 동물을 잘 제압할 방법 같은 게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던 거다. 의사는 큰일 날 소리를 들었다는 듯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면 카라는 평생 약을 먹지 않는 고양이가 될 겁니다. 고양이는 몹시 예민한 동물입니다.” 이번에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예민한 짐승이라니. 둥근 네모처럼 이상한 말 같았다. 자고로 동물이란 주는 대로 먹고 아무 데서나 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즈음 나는 이 세계의 동물들이 얼마나 비천한 지위에 있는지 빠른 속도로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권력관계가 전복된 그 작은 진료실이 꼭 외계 행성처럼 느껴졌다. 그는 놀라운 말을 계속했다. “억지로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카라가 싫어하면 곧바로 물러나세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천천히, 매일, 노력하십시오.”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비효율적인 주문이었다.

약을 먹지 않으려는 어린 고양이와 약을 먹이려는 어른 인간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카라는 평생 약을 먹지 않는 고양이가 될 거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는 매일 물러서는 법을 익혔다. 그것은 왜인지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가 실패했던 일을,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카라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지난날의 아버지에게도 그런 걸 가르쳐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매일매일 실패를 쌓아가던 어느 날 기적같이 카라가 알약을 삼켰다. 우리는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십 평생 가장 뿌듯한 성취였고 훌륭한 팀워크였다.

카라는 여전히 나를 물고 할퀴었지만 조금씩 그 힘이 약해졌다. 그도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이롭고 뭉클했다. 카라는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고유하고 생생한 존재다. 나는 그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온전한 주체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을 때도 그 속에 날카로운 발톱이 숨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다른 종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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