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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반지하, 딱하네, 어쩌다가

등록 2022-09-01 18:19수정 2022-09-02 02:38

지난달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일가족 세명이 참사를 당한 것과 관련해 폭우참사 희생자 추모 주거단체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 앞에서 주거취약층이 겪는 재난위험 해결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일가족 세명이 참사를 당한 것과 관련해 폭우참사 희생자 추모 주거단체가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시의회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 앞에서 주거취약층이 겪는 재난위험 해결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우연 | 이슈팀 기자

8월12일 저녁,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앞에 시민 수백명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들 앞에는 ‘미안합니다.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모여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시민이 가던 길을 멈추고 물어왔다. “얼마 전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 집에서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제”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는 “아, 그 일이구나. 아이고 딱해라, 어쩌다가…”라고 했다. 혀를 끌끌 찬 뒤 다시 페달을 밟고 가는 그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땐, 참 간편한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추모제 여러 발언을 듣는데, 유난히 가슴에 박힌 말이 있었다. 지적장애인 언니, 13살 딸과 함께 숨진 홍아무개씨가 활동했던 노조의 지부장 발언이었다.

“많은 언론이 반지하, 반지하 이야기하면서 마치 (홍씨의) 삶이 궁핍했던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홍 부장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았고, 너무나도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함께하는 가족들과 늘 웃으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게 살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얘기하고, 늘 아이와 재밌는 장난을 치면서 웃곤 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1년 동안 살았던 반지하 원룸이 떠올랐다. 첫 자취였다. 같은 가격 여타 원룸과 비교했을 때 더 넓은데다 학교와는 걸어서 5분 거리라는 게 큰 이점이었다. 무엇보다 친구들을 잔뜩 불러 함께 밥 먹고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에서 사는 1년 동안 반지하라서 안 좋았던 일은 딱히 없었고, 즐거웠던 첫 독립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지하방 계약이 끝나자, 이번엔 이전 집 크기의 절반밖에 안 되는 1층 원룸으로 옮겼다. `반지하'의 부정적인 인상 때문이었다. 반지하에 살던 시절,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놀러 와” 하면서도 “근데 반지하야”라는 말을 재빨리 덧붙이곤 했다. “곰팡이 피지 않아?” “시끄럽진 않아?” “위험하진 않고?” 걱정 어린 질문도 자주 들었다. 사실 반지하는 살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예민했던 이십대의 나는 그런 시선과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추모제 날 지부장의 말이 돌덩이처럼 마음속에 내려앉은 것은, 이십대 중반 내가 피하고 싶었던 그 시선과 지금 나의 시선, 그리고 “딱하네, 어쩌다가”라고 말한 시민의 시선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지하 집 침수로 숨진 이들의 사연이 알려진 뒤 사회부 기자로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루뭉술하게 ‘반지하의 문제점에 관해 알아보겠다’고 아침보고를 했다. 뚜렷하지 않은 문제의식이었고, 결국 반지하를 없애나가겠다는 이들과 반대쪽의 논쟁을 지켜만 보다 결국 기사를 쓰지 못했다.

사고 뒤 서울시는 주거 목적 반지하 신축을 허가하지 않고, 이미 지어진 반지하는 유예기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없애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고 다음날 반지하 집 창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살펴보는 사진을 국정홍보용 카드뉴스로 만들어 올려 논란이 일었다. 위정자가 져야 할 책임과 언론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다르겠지만, 나 역시 이들과 특별히 다른 시선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건너뛴 채 타자화하는 데서 그쳤다는 점에서 뭔 차이가 있을까. 홍씨 가족과 동료들을 마음 아프게 한 태도들이 실은 내가 가졌던 것과 멀지 않은 게 아닐까. 여러 상념 속에서 추모제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하나 아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겨레>는 팀을 꾸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누가 반지하에 사는지, 이들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취재한 결과물이 ‘2022, 반지하에서 산다’라는 기획에 담겼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동료들이 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내 몫의 부끄러움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때로는 공감과 애도라는 동료 시민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해보게 돼 다행이려나.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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