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충북지사가 지난달 3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에서 열린 2022년 국민의힘-충청권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프리즘] 오윤주 | 전국부 기자
‘고집불통’. 충북도청 공무원이 꾸린 충청북도 공무원노동조합은 김영환 충북지사를 이렇게 규정했다. 평소 ‘소통 지사’를 자처해온 김 지사로선 마뜩잖은 표현이다.
김 지사는 취임 전 언론이 허용하고 따라만 준다면 윤석열 대통령처럼 출근길 인터뷰(도어스테핑)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도민과 소통하는 문자 전용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고, 직원을 두루 만나는 등 소통 행보를 보였다.
게다가 틈나는 대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대통령과 막걸리 마신 일, 수해 현장 방문, 국회 방문 등 공식 일정에서 산책과 농사 등 소소한 일상까지 담는다. 취임 이후 올린 글이 50여건이다. 그의 글엔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향도 크다. 그는 이전에 유튜브에도 정치논평 등 다양한 콘텐츠를 올렸는데, 지금도 구독자가 14만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그에게 ‘불통’이라니 섭섭할 만하다. 하지만 노조는 “김 지사가 말은 많은데, 가볍다”고 쏘아붙인다.
김 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다변·달변가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 장관을 지냈으며, 시·수필·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펴낼 정도로 박학다식해 어디를 가도 청산유수다. 취임 뒤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랬다. 자신의 공약·비전·일상을 거쳐 정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2시간 남짓 간담회 말미에 “제가 말이 많았나요. 좀 들었어야 하는데…”라며 일어섰다.
문제는 말만 앞선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 지사가 “선거 때라 좀 질렀다”고 한 출산·양육수당 공약이 대표적이다. 시장·군수들이 애초 협의조차 없었다며 예산 분담 거부 태세를 보여 난감한 상황이다.
도청 안 직원 주차공간을 줄여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차 없는 도청’과 관련해서도 많은 말과 글을 쏟아냈다. “도청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라”는 한마디에서 출발한 ‘차 없는 도청’은 깜짝 정책이다. 공약도 아니고, 변변한 숙의도 없었다.
‘차 없는 도청’ 시범운영(8월8~12일)을 앞두고 지난달 1일 도는 주차타워(빌딩) 건립을 보완 대책으로 제시했다. 김 지사는 이틀 뒤 행정국장을 통해 도청 신관 뒤편 300대 규모 주차타워 건립 약속을 노조에 알렸다. 자율 시행을 발표한 지난달 12일에도 주차 빌딩 건립을 언급했다. 하지만 김 지사는 꼭 일주일 뒤, 예산 부족과 도청 문화공간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등 이유를 들며 주차타워 약속을 아예 접었다.
김 지사는 ‘차 없는 도청’ 시범운영 첫날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추진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노조가 지난달 22일 직원 80%가 ‘차 없는 도청’을 반대하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고 중단을 요구하자, “지사를 반대하는 노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직원들의 뜻을 외면했다. 이후 노조는 김 지사를 ‘불통 지사’로 명명하고, 도청 주변 곳곳에 관련 펼침막을 걸었다.
‘차 없는 도청’ 시행 한달을 맞는다. 자율 시행 이후 팀장급 이상 간부들의 차도 도청 밖으로 뺐다. 이제 충북도청 안 직원(1200여명) 주차공간은 63면이 전부다. 직원 대부분은 밖에 주차하거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그사이 김 지사가 문화공간으로 바꿔 도민에게 돌려준다던 도청에선 딱 한차례 공연이 있었을 뿐이다. 민원인과 직원의 공유공간인 도청은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 셈이다.
김 지사는 취임 뒤 도청 근무환경을 둘러본 뒤 페이스북에 “도청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도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머리 바쁜 지사를 지양하고 발이 바빠야 한다”고 썼다. 직원들은 근무·복지 여건 개선 뜻으로 읽었다.
지금 직원들은 행복할까? 도민은 행복해질까? 그리고 김 지사는 발이 바쁜가, 말이 바쁜가? 말과 글은 양보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더해질 때 힘이 되고, 영이 선다. 김 지사가 귀를 크게 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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