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졸업 시즌이 지나면서 이공계 대학원에도 신입생들이 입학했다. 신입생들은 대개 사전에 논의한 연구실로 출근한다. 흔히 연구중심 대학이라 부르는 대학이라면, 연구실마다 대학원생 10여명이 상주한다. 교수 한명과 다수의 대학원생으로 이뤄진 이런 연구실 구조는, 1999년 시작된 ‘두뇌한국21’(BK21) 사업 등 여러 연구 지원 사업들이 본격화하면서 빠르게 정착했다. 두뇌한국21 사업만 해도 대학원생 수십만명에게 인건비를 지급해, 대학의 연구 기능을 크게 늘리도록 했다. 덕분에 대학원에서 연구 노동을 담당할 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한국 대학의 연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어느덧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런 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다수의 대학원생이 연구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구조는 많은 이들이 대학원에 입학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두뇌한국21 사업이 본격화되던 2000년 217만명이었던 고등학생 인구는 2010년까지 208만명 수준을 유지했으나, 2020년에는 139만명으로 줄어들었다. 2040년에는 70만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란다. 이 가운데 몇명이 대학원에 입학할지 몰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이 다른 직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지 않던가. 미국과 유럽처럼 해외에서 박사급 연구자를 끌어다 쓸 수 있던 나라들에서도 인력난을 토로하는 걸 보면 명확하다. 지금 같은 연구실 구조는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구실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 교육 기능 강화와 대학원생 개개인의 예측 가능성을 늘리는 게 그 핵심이어야 한다.
현재 연구비 체계는 좋은 논문을 대량으로 쓰는 것을 장려한다. 그렇다 보니 일단 다수 대학원생을 투입해 연구실 합산으로 다수의 논문이 나오도록 꾀하는 게 나름 효과적인 전략이다. 사람이 많다면 연구 관련 재능이 뛰어난 몇몇 대학원생이 별다른 지도 없이 알아서 논문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그 자체로 힘겨운 일인데다 그와 관련한 장려책도 마땅치 않으니, 현 시스템에서는 대학원생 개개인이 연구자로서 성장해 갈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취급된다. 아쉽게도 인구 감소로 이런 전략은 앞으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대학원생 개개인을 성장시키고 훈련하는 데 무게를 두도록, 관련 평가지표를 손보고 연구비 인센티브와도 연계시켜야 한다. 대학이 교육기관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에 더해 대학원생과 박사급 연구원, 교수 등 연구자들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비를 따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연구비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다. 지원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대적인 연구비가 적다는 점이 아니라, 연구비 지원 대상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란 점이다. 연구비 수주는 상대 경쟁이다. 따라서 연구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면 내 연구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연구로 평가됐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미흡한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에 드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연구를 그만둘지, 특정한 항목을 보완해 다시 도전할지 판단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연구비 심사 때 다양한 평가항목의 지표와 그에 따른 점수 내역 등이 좀더 세세하게 주어지길 바란다.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판단하고 미래를 그려낼 수 있다.
연구비와 이를 둘러싼 보상 체계는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연구가 진행되는 방식도 어느 정도 결정한다. 한때는 분명 성장을 추동했던 정책이 어느 순간부터는 한계를 결정짓는 제한이 되기도 한다. 인구 감소는 연구 현장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런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