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출근길 참담한 기분으로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일어난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포털에 올라온 뉴스 댓글을 살펴봤다. 분노한 수많은 여자가 댓글을 달았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현장에 순식간에 나붙었던 수많은 포스트잇이 생각났다. 그때 포스트잇에서처럼 언제까지 여자라서 죽어야 하냐는 절규들이 댓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성가족부 장관께서 친히 현장에 방문하시어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남기셨음에도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중에 기막힌 댓글을 발견했다. “여자 좀 그만 죽여 제발”이라는 댓글에 홀연히 달린 “여성도 군대를 가면 해결될 거 같아요”라는 답글. 여성도 군대 가면 해결된다니 뭐가 해결된단 말일까. 여자도 군대 가면 체력과 방어능력이 좋아져 칼 들고 숨어 있다 찌르는 괴한의 습격에 대비할 수 있다는 걸까? 여자도 군대 가면 남자들이 우습게 보지 못해 칼 들고 쫓아오는 일이 없어진단 걸까? 칼에 찔려도 죽지 않고 불사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여자도 군대 가면 ‘왜’ 그리고 ‘무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보고 노력해봐도 ‘여자가 군대에 가면 해결될 거 같아요’라는 댓글은 나로서는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말 같아 보인다.
‘여자도 군대를 가라’는 말은 그 활용 폭이 대단히 넓고, 그만큼 다양한 변형기출도 존재한다. 성차별, 여성 상대 범죄뿐 아니라 여성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답변으로 붙일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떤 기업에서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점수를 임의로 올려 합격시키는 방식으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사건이 발생했다. 저마다 원인을 분석하는데, 누군가 “여자도 군대 가면 해결될 일이에요”라고 글을 남긴다. 여군 부사관이 성폭력으로 사망한 사건에도 “여자도 병사로 군대에 가면 해결될 일이에요”라고 누가 댓글을 남긴다. 여군이 직업군인으로 지원하지 않고 일반 남성들과 같이 징집되면 여군 성폭력이 단숨에 해결될 일일까.
당연히 두 경우 모두에서 여성 군대 입대는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마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진다.
한국이 직면한 출산율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군대 안 갈 거면 애라도 낳아라”는 말은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의 훌륭한 변주 중 하나다. 같은 맥락으로 “남자는 군대에 가지만 여자는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데 왜 불공평하냐는 의견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같은, 마치 차별주의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매우 고심한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소리를 하는 질문도 존재한다. 이 문장이 최소한 유효한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나라가 남녀노소 장애 여부를 떠나 모두가 군대에 갈 수 있으면서 동시에 군대를 거부할 수 있는 선진국의 병역 형태이거나, 여자가 군대에 가는 대신 남자도 임신·출산·육아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둘 다 먼 나라 얘기기도 하지만, 한편 이미 우리나라 군대에도 복무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자원들이 존재한다.
이 글이 두서없고 화가 난 것같이 보이고, 그냥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이 싫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느낀다면, 맞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최소 열흘에 한명꼴로 여성이 남성과 사귀다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오마이뉴스> 2020년 11월9일, ‘열흘에 1명, 사귀던 남자에게 죽었다’) 누구는 당장 눈앞의 생존을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자신도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군대가 해결해주는지 모르면서 태연하게 군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댓글을 달 수 있다는 그 안일한 여유가 사람을 화나게 한다는 것.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이 그 무엇보다도 싫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