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유지민 |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고1)
거의 모든 장애인은 주기적으로 ‘장애비용'을 낸다. 이는 쉽게 말해 장애인이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휠체어나 보청기 같은 보조기기 구입비용, 병원에서의 각종 진단, 입원, 처방 등 의료비용이 대표적이다. ‘장애비용'과 같은 맥락은 환경에도 적용된다.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을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우선 장애인은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각종 의료용품부터가 위생과 감염 위험 때문에 한번만 쓰고 버려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병원에서나 볼 법한 의료용품을 가정에 구비해두고 매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소변 배출을 돕는 자가 도뇨 카테터가 있는데, 이 카테터를 요도에 삽입해 소변을 배출하기에 외부 물건과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버리고 새 제품을 써야 한다. 카테터 삽입이 원활하지 않거나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한번에 두세개씩 쓰게 된다. 다회용품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일회용품을 매일 쓴다고 자각하는 순간 마음 한켠에선 불편한 감정이 일곤 한다.
여러 종류의 다회용기 중에서 가장 보편화한 것을 꼽아보라고 하면 상당수는 텀블러를 떠올린다. 그런데 휠체어를 타며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휠체어를 타는 이에게 텀블러를 들고 외출을 하는 날은, 게임으로 치면 초고난도 ‘보스 스테이지'다. 나는 평소 뚜껑에 빨대를 꽂을 수 있는 텀블러를 좋아하는데, 이 텀블러는 휠체어 유저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음료를 마시지 않을 때 가방에 넣어두면 빨대 구멍으로 음료가 모조리 새서 난처해진다. 그렇다고 계속 들고 있자니 한쪽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된다. 특히 휠체어가 턱에 걸리는 등의 돌발 상황에서 텀블러를 들고 있다 사고가 날 뻔한 적도 많다.
멀쩡한 텀블러를 두고 밀폐형 텀블러를 사자니 돈이 아깝고, 텀블러를 휠체어에 고정하면 외부와 컵이 접촉하며 오염 또는 손상될 위험이 있다. 한번은 휠체어 브레이크 부분에 있는 텀블러 거치대에 컵을 넣어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아기가 음료를 빨아 마신 적도 있다.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컵을 쓰는 때가 많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많은 이들이 일회용품 사용과 각종 배달서비스 이용을 지양하려고 한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나에게 배달서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외식하거나 장을 보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매장 입구 앞턱과 계단에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장을 본 물건을 집까지 들고 올 자신도 없다. 외출하기도 전에 걱정할 게 한두개가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집 밖으로 나갈 의욕이 사라지고 배달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나보다 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오프라인 쇼핑이 불가능한 장애인도 많다. 어쩌면 누구보다 배달을 애용할 수밖에 없기에 남들보다 배달서비스의 문제점에 주목하고, 해결 방안을 고민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 내가 기후위기와 환경보호에 별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알게 된 이상 평생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온전히 실천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 과연 이런 우리에게 큰 잘못이 있는 걸까?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그런 불편함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기에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요즘은 불가능을 애써 고민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려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일주일 동안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반년 동안 플라스틱 컵을 일주일에 한번만 쓰는 게 더 어렵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위에 적어낸 불편함을 덜어내려 나만의 작지만 강한 꾸준함을 실천할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만약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여정을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