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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버블 안, 버블 밖

등록 2022-10-02 17:46수정 2022-10-03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정나리 | 대구대 조교수

학업의 여정에서 나는 때로 ‘유학생’이기도, ‘서울대생’이기도, ‘지방대생’이기도 했는데, 세상은 그런 날 매번 달리 대했다. ‘유학생’ 딱지는 종종 근거 없는 신뢰와 의심 사이를 오가는 반응을 자아냈는가 하면, ‘서울대생’ 나에게 세상은 온화했다. 연구를 위해 조사를 나가면 사람들은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줬고, 없는 자료까지 내어줬다. ‘서울대 버블’ 안에선 엉뚱한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버블은 안전권역이었다.

‘지방대생’인 내게 세상은 소빙하기였다. 나는 그대로인데, 온도차가 급격했다. 연구자료를 구하러 가면 냉랭한 협조를 받았다. 세상을 고민하기 전에 나를 지켜야 했다. 그 시기를 겪으면서 한 연구자로 홀로 설 수 있게 된 것 같다.

위계적인 학계이지만, 마음을 깊이 울리는 연구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는 있었다. 그 별자리는 위계의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확신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당장 환히 빛나지 않아도 곳곳의 다른 목소리들을 오롯이 담아내는 ‘작은’ 연구들의 축적 없인 훌륭한 연구가 나올 수 없단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영미 학계 해바라기로, 그 무심한 햇볕을 갈구하는 주류 한국 학계에 대한 오기도 동력이 됐다. 학문함을 통해 직시하고 해체해야 할 중심과 주변의 권력관계를 오히려 학계가 무한복제해내는 형세가 터무니없어 보였다.

신진 연구자가 되어 컴퓨터 앞에서 철저히 혼자라 느낄 때가 많았지만, 내가 찾은 별들을 하나둘씩 이어가며 힘을 얻었다. 가입비, 연회비, 투고비, 심사비 등 갖은 명목의 상당한 액수를 입금해야 한국 학술저널에서 때론 ‘복불복’ 같은 심사평을 받곤 했다. 해외 학술저널에서도 투고 때 돈을 내라는 말을 한번 들은 적이 있는데, 말로만 듣던 사기였다. 사무실 주소는 미국에 있지만, ‘시작이 반이니 큰 성과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짧은 평 밑에 150달러를 보내라며 방글라데시 소재 은행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믿을 만한 해외 학술지들은 한푼도 받을 생각이 없었고, 이름 없는 꼬마 연구자를 ‘동료’로 대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줬고, 서투른 내 문제의식의 의미와 가능성을 이해해줬으며, 결정적인 조언을 해줬다.

‘현타’가 왔던 건 북유럽 대학의 3년짜리 연구직에 지원했을 때다. 전 세계에서 들어온 81개 지원서를 누가 어떻게 검토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상세히 담긴 보고서가 공공기록물로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됐다. 원본을 제출하도록 하되 반환은 안 된다며 유세를 부리거나 면접에서 몇시간씩 대기시키는 것은 약과였던, 들러리 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채용 과정에 익숙했던 터라 떨어졌지만 기분 좋았다.

하지만 역시나 ‘시간, 장소, 의미, 모든 것이 초과된 시대’(오제, 1995)에서는 누가 뭘 하든 또 하나의 초과를 만들어낼 뿐이다. 절차의 투명성이나 지원자에 대한 예의와 무관하게, 하나의 의자에 81명이 모인다면 각자 구축한 다양한 학문 세계와 별개로 ‘시장’은 이미 초과다. 안전권역에 안착하고자 모든 것을 걸기보단, 권역 밖의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힘쓰는 게 누가 봐도 더 합당할 것 같은데, 우리 사회는 왜인지 절대다수에게 빙하기이길 고집한다.

빙하기를 버텨내려는 듯, 어딜 가나 버블이 떠다닌다. 큰 버블, 작은 버블, 버블 안에 버블이 있다. 내 일상도 주로 직장, 가족의 버블 안에 있다. 학생들은 선생인 내게 대체로 친절하고, 티격태격할지언정 가족도 날 지지해준다. 버블 안에서도 아름다운 일들이 있지만 진정 경이로운 조우들은 버블 밖에서, 버블 사이에서 뜻하지 않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우린 잘 안다.

이런 이야기가 옛날이야기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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