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신현수 |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시 김포구, 부천구, 광명구, 의정부구, 구리구, 고양구, 장흥구, 일산서구, 일산동구, 덕양구, 삼송구, 한강구, 검단동구, 검단서구, 행신구, 창릉구, 청라구, 계양구…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까지 서울시로 편입된 정체불명의 지도 한장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서울 서부 확장 개요도’라는 해괴한 제목의 지도다. 지도 모양이 주위의 모든 땅을 먹어 치운 하이에나 같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그냥 웃고만 지나가고 말기에는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다. 마치 우리 시대 날것의 욕망과 천하고 부박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공연히 내가 부끄럽다.
지난해 10월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당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김포 서울 편입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다. 이어 국민의힘 뉴시티프로젝트 특위 조경태 위원장도 ‘구리-서울 통합 특별법’을 우선 발의하고, 하남, 고양, 부천, 광명, 과천 순으로 서울에 편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서울 확장론’ 또는 ‘메가 서울론’의 시작이었다. 국민의힘의 마구잡이 발표는 수도권에서 불리한 민심을 만회하기 위한, ‘서울시민 또는 집값’을 미끼 삼은 총선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같은 당 유정복 인천시장마저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쇼”로 치부했으니 말이다. 이 ‘사기극’은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행정, 입법 절차가 1년 이상 걸릴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 동의도 얻어야 하며, 국회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방안도 없다. 서울 주변 도시의 서울 편입 소동은 당사자들의 눈을 가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고, 표를 구걸하기 위한 ‘표’퓰리즘이다.
한국의 수도권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가장 크다.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총인구의 50.2%가 살고 있다. 100대 대기업 본사의 91%, ‘상위 20개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2%가 몰려 있다. 상위 1% 근로소득자 77.1%가 수도권 직장에 다닌다. 228개 시·군·구 중 46.5%(106곳)가 3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시·도마다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 등을 이전시켰지만 경제적 불균형과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저출산(저출생), 고령화,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위험은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방안을 담아 발의한 특별법은 예상대로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서울 편입 관련 주민투표 등 행정적 절차를 회기 안에 마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만악의 근원은 ‘서울 중심사고’다. 그걸 깨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단코 없다. 이미 지방이 수도권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서울 확대론’ 또는 ‘메가 서울론’ 정책은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방자치, 분권, 국가균형발전은 우리 세대의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다. 지역소멸은 곧 국가소멸이다. 다가올 총선의 핵심적 의제는 ‘서울 편입’이 아니라 지역주의 타파와 국가 균형발전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한 핵심 과제의 근본적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면 나라야 망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 국민들의 말초적 욕망을 건드리며 눈앞의 이익만 좇는, 권력 연장에만 혈안이 되어 제 살길만 찾는, 그러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를 뗄 게 뻔한, 부화뇌동의 소동이 슬프고 참담하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헌법 123조 2항의 내용이다. 우리 시대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