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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여성, 생명, 자유” 이란 여성들은 포기한 적이 없다 / 박민희

등록 2022-10-12 14:15수정 2022-10-18 15:42

이란 시위에서 여성들이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고 있다. 김재욱 화백
이란 시위에서 여성들이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고 있다. 김재욱 화백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은 팔레비 국왕의 독재에 맞선 성직자, 지식인, 상인 그리고 수백만 여성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성공했다. 하지만 곧 강경보수 성직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성직자들이 통치하는 이슬람공화국 정부는 모든 여성이 히잡을 쓰도록 명령했고 1983년 이를 법으로 강제하고 처벌하기 시작했다. ‘도덕적인 복장으로 여성들의 존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히잡은 여성, 시민의 일상을 통제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란 여성은 대학졸업자의 65%일 정도로 교육열이 높지만, 취업과 일상 곳곳에서 차별의 벽에 부딪힌다.

정권은 필요에 따라 여성에 대한 통제 수위를 조절했다. 2021년 대선에서 강경보수파 성직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투표율은 48%로 역대 최저였고 테헤란에선 유권자의 26%만이 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민심은 차가웠다. 라이시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억압적 통제로 강경 지지층을 결집하려 했다. ‘도덕 경찰’을 강화해 지하철, 대학, 식당과 찻집 등 곳곳에서 ‘복장 불량’을 이유로 여성들을 위협하고 처벌했다.

9월16일 테헤란 지하철 역에서 머리카락이 삐져나오게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분노하며 시작된 이란 시위는 이제 4주째 계속되고 있다.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진압으로 200명 가까이 숨졌다고 인권단체들은 전하고 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는다. 이란 여성들의 “잔, 젠데기, 어저디(여성, 생명, 자유)” 외침에 남성들이 함께 하고, 교수, 예술가, 운동선수, 언론인, 소수민족들까지 동참해 거대한 연대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노동자와 상인들이 파업에 동참하기 시작하고, 일부 개혁파 성직자들도 군경의 강경대응을 비판하고 있다. 시위는 더이상 ‘히잡 반대’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난, 부정부패, 통치 엘리트들의 위선을 비판하며, 신정통치 체제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란 여성들은 포기한 적이 없다. 1979년 혁명 직후부터 히잡과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1997년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 하타미를 당선시키기 위한 운동과 2009~2010년 강경보수파 대통령 아마디네자드가 재선된 대선 선거 부정 의혹에 항의하며 7개월 동안 계속된 ‘녹색운동’ 시위의 주역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2006년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법을 바꾸려는 ‘100만 서명’ 운동, 2014년에는 히잡을 벗은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나의 비밀스러운 자유’ 캠페인에 나섰다. 2017년에는 거리에서 히잡을 벗은 채 1인 시위를 벌이던 여성들이 잇따라 투옥되었다. 이란 최초 여성 판사였지만 이슬람혁명으로 해고된 시린 에바디는 인권운동가들을 용감하게 변호해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번 시위를 ‘외세의 음모’로 규정한 이란 정부가 폭력으로 시위를 굴복시키더라도, 자유와 존엄, ‘보통의 삶’을 되찾으려는 이란 여성들의 열망과 용기를 빼앗을 수는 없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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