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열린 경기 평택 에스피씨 계열사 에스피엘(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대학가는 요즘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다. 시험기간엔 군것질을 좀 해줘야 머리가 돌아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학교 도서관과 자취방을 오갈 때마다 편의점에 자주 들르곤 했다. 며칠 전에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1+1 호빵 행사’가 눈에 띄었다. 한푼이 귀한 자취생에게 1+1 행사는 놓칠 수 없는 호재다. 행사 제품 두 봉지를 양손에 쥐고 계산대로 가다가 멈칫했다. 집어 든 호빵이 에스피씨(SPC)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호빵을 바로 내려놓고 그길로 편의점을 나왔다. 내게 에스피씨 빵은 더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지난 15일, 에스피씨 계열사 에스피엘(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혼합기에 끼여 사망했다. 또다시 일터에서 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했고, 회사 쪽 대응에 치가 떨리고 억장이 무너졌다. 사망사고 이튿날, 공장에선 사고 현장에만 천을 둘러놓고 다른 기계를 재가동하며 작업이 이어졌다. 국과수 감식이 끝나지 않아 선혈이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한 공간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40여명 동료에겐 추모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정상 출근해 평소대로 할당된 작업량을 수행해야 했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사고 현장을 가려두고 공장을 재가동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빵 만들다 죽은 노동자의 빈소에 자사 빵을 빈소 답례품으로 쓰라며 전달한 것은 최악이었다. “일괄적으로 나가는 경조사 지원품 중의 하나”(회사 쪽 해명)라지만, 직원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비통한 유가족의 심정을 고려했다면 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처리해야 할 일’에 불과했을, 영혼 없이 전달된 빵 한 상자는 안 그래도 너덜너덜해진 유가족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는 2인1조 작업이라는 정상적인 근무 수칙,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기계 작동이 멈추는 인터로크(자동방호장치)와 안전센서 설치 등 기본적인 안전설비가 갖춰져 있었더라면 희생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빵 만들다 죽은 노동자에게 답례품인 빵이 전달될 때에는 ‘일괄적 지원’이라는 원칙이 한치의 예외 없이 적용됐다. 회사의 원칙은 왜 이럴 때만 오차 없이 작동할까. 참 아이러니하다.
여기에 사고 뒤 회사 쪽은 사망사고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파리바게뜨의 아홉번째 해외진출 홍보에 대대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여론이 들끓은 뒤에야 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동자도, 소비자도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지켜지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빵을 좋다고 먹을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불매운동이 그 증거다.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온라인에선 의문의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맹점주들은 무슨 죄냐”, “그런다고 에스피씨에 조금이라도 타격이 있겠나”, “불매운동이 의무는 아니지 않나” 등 날 선 반박글도 눈에 띈다. 그렇다. 불매운동이 강제나 의무는 아니다. 솔직히 에스피씨는 그간 승승장구해온 기업이고, 이번 불매운동이 그들의 곳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불매운동에 동참하며 생각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지는 말자’고. 편리함과 익숙함에 저항해 소비해선 안 될 브랜드를 분별하며 소비를 통제하는 일은 때론 번거롭다. ‘뭐가 크게 변할까?’라는 질문에 뾰족한 답은 없다. 하지만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변화에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비인간적인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어 기업이 조금이라도 변하도록 소수점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 바라며.
애도를 넘어 행동으로 가는 이 길목에서 명심하려고 한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 온도를 놓치지 말자고. 그래서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가자고. 그렇게 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