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으면 그뿐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그럴싸한 비전은 내세운들 무슨 소용이냐는 듯싶은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어쩌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시대에 걸맞은 ‘겸손한’ 정치권력의 모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김명인ㅣ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났다. 처음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지만 기왕 박빙의 치열한 선거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마당에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희망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출범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혹시라도 수구보수의 구태를 벗고 능력 있고 스마트한 합리적 보수의 길을 걸어, 일본처럼 보수세력이 장기집권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도 그들이 나라를 말아먹는 수준의 지리멸렬 상태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은 6개월이 지났지만 솔직히 오리무중이다. 윤석열 후보는 오직 대통령 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는 항간의 우스개가 있지만 도대체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공약집을 보면 잡다한 각론은 많은데 그 각론을 하나로 통합한 총론이 없다. 사실상 아무 내용도 없는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걸 국정비전이라고 내놓았을 뿐이다. 결국 근거 없는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났지만 이명박 정권은 ‘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강국’이라는 이른바 ‘747 공약’을 내세워 경제대통령다운 통 큰 공약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박근혜 정권 역시 놀랍게도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적 의제를 앞세워 경제불평등에 시달리던 국민을 잠시나마 기대에 부풀게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어쩐 일인지 그럴싸한 청사진 한장도 내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난 6개월 동안 윤석열 정권이 한 일을 되짚어보자. 좀 굵직한 것들을 먼저 살펴보면, 대통령 집무공간의 용산 국방부 건물로의 이전과 청와대 전면 개방,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 탈원전 기조의 친원전 기조로의 전환, 대북 온건노선에서 강경노선으로의 전환 등이 떠오른다. 온갖 의혹과 잡음과 고비용을 낳은 집무실 이전은 물론이거니와, 여가부 폐지, 친원전 정책, 대북 강경 기조로의 전환 같은 매우 네거티브한 변화들이 과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비전으로 적당한 변화들인지 의문이다. 그 밖에 그들 스스로 홍보한 집권 6개월의 ‘치적’들을 살펴보면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 이전, 탈원전 폐기 외에 대통령실 축소, 서민주거비 경감,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보상 강화 같은 것이 있다.(정책주간지 <공감> 2022.11.17.) 과연 각 정부부처의 연간 통상업무를 열거한 것 같은 이러한 일들을 출범 6개월을 맞은 새 정부의 치적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이러한 ‘자칭 치적’들을 가지고 새 정권 수립에 따른 국민적 기대를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무 오만하거나 너무 순진하거나 둘 중 하나다. 기껏 30%를 넘나드는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오히려 절대다수 국민은 잇따른 인사 실패와 검찰, 감사원 등 공권력을 동원한 이전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야당 인사들에 대한 편파적 사정 공세, 협치와는 거리 먼 독선적 국정운영, 국제무대에서의 연이은 외교 참사로 과거 어느 정권 초기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무능한 정권의 존재와 행태에 전면적인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이태원 참사에 대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응을 계기로 이런 피로감과 의구심은 개탄과 분노의 차원으로 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출범 6개월밖에 안 된 정권을 두고 퇴진, 탄핵 등 극단적인 표현들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일찌감치 ‘윤석열 퇴진’을 내걸고 광화문, 용산 등지에서 십수차례 가두 대중집회를 열어오고 있다. 그것은 무능 정권에 대한 국민저항권의 정당한 행사로서 지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현 정부의 행태가 개탄과 분노를 유발한다고 해도, 그야말로 국헌을 유린하고 국기를 흔들 만한 명백한 범죄적 과오를 저지르고 이를 입증할 확고한 증거가 없다면 박근혜 때처럼 탄핵소추를 통한 중도퇴진은 쉽지 않다. 출범 반년을 갓 넘긴 정권에 퇴진을 요구해야 하는 그 안타까움은 이해하지만 현재로서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은 총선이나 차기 대선을 통해서나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로서는 박근혜 퇴진 이후의 학습효과 때문에라도 2016년 겨울처럼 일반 국민이 100만명씩 모여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은 벌어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정권 붕괴 이후 촛불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그 지지와 성원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고, 그로써 현재의 수구보수세력(국민의힘)과 중도보수세력(더불어민주당) 사이 정권교체로는 우리 시대가 당면한 진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지배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진짜 권력은 시장을 지배하는 총자본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며, 겉보기에 매우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세력이 구축한 거대 양당 체제는 5년, 10년마다 서로 교대하면서 이 진짜 권력자들의 들러리를 서며 떡고물들이나 챙겨 먹는 상호의존 시스템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으면 그뿐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그럴싸한 비전은 내세운들 무슨 소용이냐는 듯싶은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어쩌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시대에 걸맞은 ‘겸손한’ 정치권력의 모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현 수구보수정권의 대안이 곧 중도보수정권의 재집권에 불과한 이 빈곤한 악순환을 이제 끝내고 더 멀고 더 깊은 곳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야만적 통치를 종식하고 엄습하는 기후재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구성원 모두의 다양한 생활상의 희망과 요구가 충족될 수 있는 참된 민주주의 사회를 열어나가고자 한다면, 현 상태를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대 보수 양당의 회전문식 장기집권체제를 단호히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에 대한 순응주의와 패배주의를 과감하게 넘어서는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확장해나가며, 이를 현실정치의 영역에서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운동을 조직해나가는 담대한 기획을 시작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