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입장 차이는 명백한 것이며, 상대방의 입장은 불만스러운 것을 넘어 어떻게든 꺾어버리거나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할 것이다 싶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수많은 차이가 공존하고 각축하는 다양성의 공간이고 그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안정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와 다양성의 각축과 경쟁을 여하히 조정하는가가 바로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김명인ㅣ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되어 있던 홍범도를 비롯한 식민지 시대 무장독립투쟁 영웅들의 흉상 철거·이전 결정과 후속 논란을 두고 일부 사람들이 이를 ‘역사전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전쟁이라는 선정적 표현까지 쓸 필요는 없겠으나, 식민지화를 통해 근대 경험이 시작되었고 식민지 체제의 종식이 온전한 민족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대신 냉전 체제의 영향 아래 좌우 대립과 참혹한 내전을 통한 분단 체제의 고착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내력을 생각하면, 과거사의 교훈을 올바로 정리해 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이를 둘러싼 해석 투쟁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해석 투쟁은 합방이라는 미명으로 이루어진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적 폭력으로 원천 무효인가 아니면 봉건 조선의 지배 세력이 자초한 것으로 수락할 수밖에 없던 숙명적 역사 과정인가 하는 논란에서 시작해서, 일본 식민 지배가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긍정적 적극적 역할을 했는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적 착취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 논쟁과 그로부터 파생된 논란이라고 할 수 있는 친일파 청산 문제나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관련된 논쟁, 해방 직후 국가 만들기를 둘러싼 좌·우·중도 노선을 둘러싼 논쟁, 한국전쟁 발발 책임에 관한 논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정통성/정당성 논쟁, 한국전쟁과 그 이후 냉전적 분단 체제 형성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논쟁, 박정희 혹은 이승만의 역사적 공과에 관한 논쟁 등 다양한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져왔으며, 시기와 상황에 따라 어떤 주제는 매우 선명하게 돌출되기도, 어떤 주제는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장기적으로 잠복되어오기도 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오랜 숙제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시간이 가도 그저 계속 팽팽하게 적대적 평행선을 그어왔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런 논란이 시작된 것은 1987년 직선제 개헌과 제도적 민주화의 일정한 정착 이후 그나마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뒤의 일이며, 동시에 많은 사회적 갈등이 자유롭고 공개적인 사회적 대화와 토론, 관련 법이나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점차 해소되거나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위에서 적시한 역사 해석 투쟁의 주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주제들은 크게 보아 식민지 시대의 문제와 해방 이후의 문제로 나뉘는데, 식민지 시대의 문제들의 경우 일본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여전한 적대감과 피해의식 그리고 민족주의적 정서의 영향으로 친일파나 일제 잔재 문제, 위안부나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등에 있어서는 대체로 반일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견해들이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고, 해방 이후의 문제들의 경우 전쟁 체험과 냉전 의식의 장기 지속 영향이겠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인식과 폭넓은 반공주의, 친미적 경향이 지배적인 상태이고,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역사적 공과 같은 문제는 논쟁적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여론 지형을 전반적으로 본다면 반일민족주의적 경향에서는 이른바 진보좌파 쪽이 강세를 띠며 여기에 일부 민족주의 우파가 함께 힘을 실어주고 있는 편이고, 반북반공주의적 경향에서는 이른바 보수우파 쪽이 강세를 띠어왔다고 할 수 있으며, 각각의 구체적 사안과 상황에 따라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 양해(?)하면서 일종의 사회적 힘의 균형을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스럽다고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적 합의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세상을 바꾸겠다고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서로의 입장 차이는 명백한 것이며, 상대방의 입장은 불만스러운 것을 넘어 어떻게든 꺾어버리거나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할 것이다 싶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수많은 차이가 공존하고 각축하는 다양성의 공간이고 그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안정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와 다양성의 각축과 경쟁을 여하히 조정하는가가 바로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기 입장을 절대시, 신성시하거나 상대방의 다른 입장들을 폐기나 절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정치가 아니라 폭력적 전제정치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윤석열 정권 성립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행보는 그런 점에서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라는 것을 내세워 이를 ‘공산전체주의’와 대비시키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을 위한 진보 보수 불문 역대 정권의 노력을 마치 자신들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역행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그렇지만, 육사의 홍범도 흉상 철거 결정을 둘러싼 현 정부 인사들의 언행은 식민지 시대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을 분리해 내고 그 대한민국을 친미 친일 반공 제일주의 국가로 고착시키려 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에 두고 있는 현행 헌정 질서에 대한 일종의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갑자기 이 정권이 이러한 반헌법적이고 쿠데타적인 발상으로 이데올로기 투쟁의 기치를 내걸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는 지난 30여년간 한국 사회가 비록 여전히 문제적이기는 하지만 긴 세월을 두고 성취해온 나름의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무시하는 그야말로 전체주의적 폭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길게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기후위기, 짧게는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심각한 경제위기로 매우 심각한 난국에 처해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이러한 난데없는 시대착오적 ‘역사전쟁’에 정치사회적 역량을 소모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다.
항간에서 추측하듯이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자기 세력으로 재편된 여당의 승리와 그 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극우 세력의 결집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집권 이후 그가 저질러온 국내외적인 각종 사건 사고에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예측 불가한 그의 행보는 여전히 낯설고 도무지 위험천만해 보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