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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피뢰침

등록 2023-01-29 19:11수정 2023-01-30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대학 시절 단편소설을 탐독하곤 했다. 이제는 문학상수상집이나 이따금 들척거려 보지만, 당시만 해도 문학과지성사 혹은 창작과비평사 계간지를 정기구독하기도 했다. 신경숙 작가에 푹 빠져 있던 즈음이었다. 은희경 작가의 등장은 매우 신선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등단. 이번에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이었다.

세기말이었기 때문일까? 1999년 발간된 김영하 작가의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여전히 기억에 또렷하다. 작가는 담배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성공적이었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작가는 그 의도에 충실한 소설을 썼다. 쾌쾌하면서 금세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 소설집에 담긴 9편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피뢰침>이었다.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 정말 그런 모임이 있을까. 물론 없을 이유도 없다.

소설 속 사람들은 벼락을 맞기 위해 안테나(혹은 피뢰침)를 들고 적란운을 찾아다닌다. 공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함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벼락은 급작스런 기층의 변동으로 적란운이 형성되고 위의 찬 공기와 아래의 더운 공기가 충돌할 때 발생한다. 주로 경칩과 춘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찬 공기를 위로 밀어내면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날씨에 관한 간결하지만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다. 무엇보다 경영학을 전공한 작가가 벼락을 공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벼락은 번개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낙뢰라고 불리기도 한다. 번개, 익숙한 기상현상이다.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래서 신비로운 빛. 번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첫 과학자는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250여년 전 연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번개가 전기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특히 번개를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번개의 발생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그 결과 피뢰침이 발명됐다. 지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이 단순한 장치는, 이제 모든 건축물에 필수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번개는 보통 적란운에서 발생한다. 그보다 키가 작은 난층운에서, 혹은 화산 폭발로 인한 먼지와 가스 분출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대기가 몹시 불안정할 때 발생하는 키 큰 먹구름, 적란운. 이 구름과 함께 발생하는 번개는 보통 구름 속, 구름과 구름 사이, 구름과 대기 사이에서 발생한다. 아주 이따금 구름과 지표 사이에 발생한다. 이것이 곧 벼락이다.

벼락을 맞으러 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연평균 10만번 이상의 벼락이 발생한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경기 남부와 서해 남부 해상 근처다. 대기가 불안정한 7월과 8월에 특히 빈번하다. 그러니까 한여름 해당 지역의 대기가 불안정해서 적란운이 크게 발달한다면, 번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번개를 지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다면, 곧 벼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꼭 여름이 아니어도 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봄철 벼락도 빈번하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 벼락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괜히 ‘날벼락’이란 말이 생겼을까? 느닷없이 내려치는 벼락, 날벼락. 대부분의 벼락은 사실 날벼락이다.

간만에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사실에 기반한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해야 했다. 특히 고압 전기에 의해 산소분자가 깨지면서 오존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벼락이 칠 때면 표백제 냄새가 난다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섬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파가 반복되는 이 겨울, 무더운 한여름 벼락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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