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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구온난화가 부른 ‘극한호우’…장마가 두렵다 [손석우의 바람]

등록 2023-07-16 18:40수정 2023-07-17 02:42

14일 홍수경보가 내려진 대전 갑천 만년교 모습. 경찰이 차량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14일 홍수경보가 내려진 대전 갑천 만년교 모습. 경찰이 차량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손석우

ㅣ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윤흥길의 <장마>, 첫 문단이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린 소설은 지루하고 불편한 장맛비를 배경으로 참담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늘은 잠시 선심을 쓰는 척했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이 악의에 찬 빗줄기를 주룩주룩 흘리곤 했다.” 1970년대 장마는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악의에 찬 빗줄기. 그런데 어쩐지 최근 집중호우를 닮았다.

올여름 장마의 시작은 요란했다. 교과서적으로 장마는 정체전선이 한반도에 드리울 때 시작한다. 그런데 정체전선이 등장하기도 전부터 비가 쏟아졌다. 그것도 강력한 집중호우였다. 특정 지역에 국한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중호우가 발생했고, 일부 지역은 사상자도 나왔다. 집중호우가 재난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했다.

작년 강남 홍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집중호우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사실 대기가 워낙 불안정했기 때문에 비는 언제든 내릴 수 있었다. 다만 전선이 남쪽에 치우쳐 있었는데도 천둥과 번개 그리고 돌풍을 동반한 강력한 집중호우가 발생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벼락만 하더라도 3천회 이상 관측되었다. 6월 말 기준으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대기는 불안정했고 구름은 크게 발달했다.

지난주까지 집중호우는 더욱 잦아졌다. 정체전선은 뚜렷해졌고, 저기압은 전선을 따라 혹은 전선 북쪽으로 지속해서 발달하고 있다. 서해상으로 수송된 다량의 수증기는 전선을 타고 상승하면서 빗방울로 변했다. 그리고 물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시간당 50㎜가 넘는 집중호우.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폭우였다. 보꾹은 지붕의 안쪽을 뜻한다. 그러니까 지붕을 뚫을 만큼 강력한 비가 내린 것이다. 저기압이 한반도 북쪽으로 빠져나간 후, 정체전선은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미처 뿌리지 못한 비를 마저 내렸다. 기상청은 이번 주 초까지 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주 처음으로 극한 호우 안내문자가 발송되었다. 기상청은 1시간에 50㎜의 비가 내리고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에 이르면, 극한 호우 안내문자를 보낸다. 지난해 강남 홍수를 겪고 도입된 제도이다. 첫 문자 발송이 지연되고 내용이 잘못 전달되기도 했다. 처음은 항상 어렵지 않은가.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분명 필요한 조치였다.

집중호우가 낮에만 발생한다면 안내문자가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작년 강남 홍수처럼 밤시간에 집중호우가 발생한다면 문제가 다르다. 서해상에서 발달하는 집중호우 구름은, 보통 낮보다 밤에 크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야간에 구름 상층이 급격히 차가워지는 반면, 바다는 여전히 따뜻해서 불안정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구름은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한밤중 혹은 이른 아침에 집중호우를 내린다.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집중호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전 6시 전후다.

기상 재해를 그저 지구온난화 탓으로 돌리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빈번해진 집중호우는 분명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는 과거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비가 내린다면 더 많아진 수증기로 인해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집중호우가 빈번해진 이유다.

올여름, 장마가 두렵다. 비는 이미 평년만큼 내렸다. 그리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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