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미궁의 사건이 벌어진다. 목격자 없는 사각지대에서 사건의 단서는 창문의 파편처럼 일부만 현장에 흩어져 있다. 이걸 끼어 맞춰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렵다. 홈스의 조수 왓슨은 뻔한 물증을 들이대며 장황하게 설명해보지만, 번번이 범인이 짜놓은 알리바이에 영합하기라도 하듯 정곡을 빗나간다.
대신 홈스는 작은 물방울에도 대서양의 흔적이 묻어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소한 것에서도 대담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열쇠를 찾아낸다. 때론 적극적으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기상 전문가들도 수시로 사건 현장을 찾는다. 태평양 섬 괌에 태풍이 상륙하면, 기상학자 마크 랜더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태풍이 할퀴고 간 현장을 찾아다녔다. 바람과 해일로 휩쓸려간 바위나 나무의 흔적을 살펴 태풍의 구조와 강도를 추정했다.
소나기구름이 발달하면 갑자기 기상이 돌변하며 순식간에 비바람을 쓸어내고는 재빨리 달음질친다. 예리한 칼날로 잘라내듯 폭이 1㎞도 채 안 되는 좁은 구역에, 순간 돌풍이 불어 비닐이 갈가리 찢기고 철골은 엿가락처럼 휜 비닐하우스 현장에는 이미 바람이 잔잔해진 지 오래다. 워낙 국지적이라 지나간 기상 레이더 영상이나 주변 관측자료를 뒤져도 순식간에 피해를 주고 사라진 날씨의 변덕을 입증하기 어렵다. 하지만 귀납추리에 밝은 홈스라면 현장의 작은 단서에서도 날씨가 벌인 일의 전모를 복원해 낼 수 있으리라.
1975년 여름, 악천후로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활주로에 진입하기 직전에 추락했다. 기상학자 테드 후지타가 현장 감식에 나섰다. 널브러진 동체 잔해는 원점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일찍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진 뒤 건물과 나무 잔해들이 방사형으로 밀려난 것을 눈여겨 봐두었던 것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되었다. 발달한 소나기구름에서는 폭탄이 터지듯이 찬 공기 뭉치가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이것이 활주로 부근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난기류가 착륙하던 비행기를 덮쳤다는 걸 추리해냈다. 작은 폭탄이 터진다는 뜻을 담아, 이 돌풍에는 ‘마이크로버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형 참사를 겪은 공항들은 서둘러 관측기기를 보강하고, 저고도에서 급변하는 돌풍을 경보하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민간 영역에서는 기상 포렌식 전문가가 날씨가 연루된 사건의 증거를 찾아 나선다. 이들은 기상 분야의 사설탐정이나 다름없다. 달이 중천에 떠 있을 시각이라 목격자의 진술을 입증할 가시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것인지, 아니면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달빛을 가려 시야가 흐렸던 것인지를 살피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인상파의 서막을 알렸던 모네의 화제작 <인상, 해돋이>가 언제 어디서 그려낸 것인지, 조수 간만과 기상 조건, 천문학적 일출 시각 등을 분석해 밝혀내는 것도 이들이다. 옥외 스포츠 경기 도중 외상으로 인한 보험 청구 건에서 영하의 기온에서 빙판길 미끄럼으로 일어난 사건인지 아니면 주변 다른 요인으로 인한 우발 사건인지를 따지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상감정사들이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재판이나 보험금 심사, 각종 교통사고에서 불가항력적인 날씨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 외에도, 범죄 현장에서 기상 조건에 따른 물증의 해석 등 역할도 다양하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며 태풍이나 폭풍우의 강도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궂은 날씨를 틈탄 사건 사고도 더욱 은밀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게다가 기온이 상승하면 사람의 불안정한 심리와 날씨 변덕이 맞물리면서 범죄율도 함께 늘어난다지 않는가. 온난화가 진행되며 기상감정사의 일손도 이래저래 더욱 바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