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022년 1월27일 오후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 연합뉴스
장현은 | 사회정책팀 기자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이 추위가 얼른 가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봄에 있는 생일 때문이다. 진즉 한살 더 먹어놓고서는 괜히 한살의 무게를 느끼고, 새 삶을 다짐하고,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날이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도 그 1년의 무게를 느낄 만큼 누구보다도 ‘화려한’ 생일을 맞았다. 과거의 진통이 길었던 탓인지 시행 1년을 두고 언론에서는 이런저런 상반된 평가들이 쏟아졌다.
시행 1년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나도 다양한 취재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두달 만인 지난해 3월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권금희씨 인터뷰도 그중 하나였다. 남편 사고 당시 임신 3개월째였던 권씨는 이제 100일 아기의 엄마가 됐다. 배가 점점 불러오고, 출산하고, 아이가 100일을 맞는 동안 권씨는 기자회견장을 찾아다니면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해야 했다. 그렇게 사고 뒤 11개월을 보냈건만 수사기관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보내던 설날에 남편 차례상을 고민해야 했다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이와 함께 소소하게 설 명절을 보냈다는 권씨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소가 된다 한들, 솜방망이 처벌일까 봐 더 두렵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주에 방청하고 온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재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소 사건으로 유명한 두성산업 공판 참관을 위해 경남 창원지법을 찾았다. 두성산업은 그 이름도 어려운 ‘트리클로로메탄’이란 화학물질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세척액을 다루면서 작업장 안에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 10여명에게 집단 독성간염을 유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회사 대표는 이날 법정에서 “세척제에 해당 성분이 함유돼 있음을 사고 당시에 몰랐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10여년 전까지 건설·제조 현장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으로 일했다는 이 대표는 앞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헌이라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세척제를 두성산업에 납품한 유성케미칼 대표는 “(물질안전보건 자료와 관련해) 그런 상세한 데이터를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냐”고 말했다. ‘해당 물질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 없느냐’는 질문에는 “오며가며 마당에서 한마디 들은 것도 보고라 할 수 있겠으나, 상시적인 보고는 없었다. 잘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세척제가 세척만 잘되면 되니까”라는 진술에서는 허무함마저 느껴졌다. 결국 납품하는 쪽 대표는 관심이 없었고, 납품받은 쪽 대표는 어떤 물질이 들어가 있는지도 몰랐던 셈이다.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기업의 안전에 관한 시각이 여전히 허술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재판 과정이었다. 이보다 더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장면이 있을까.
취재 과정에서 한 변호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1주년이라고 해서 어떤 법 하나만 주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알려면 현장을 알아야 한다. 현장은 왜 아직 위험한지, 노동자는 왜 계속 죽는지 현장을 같이 봐야 한다.” 그의 말처럼 중대재해처벌법 1년은 특별하지만 중대재해는 특별하지 않다. 일터에서는 거의 매일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산재 피해 유족들은 불안함 속에서 합당한 조치를 기다리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엔 노동자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어느 1주년의 특별한 관심보다, 매일의 관심과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넘은 권금희씨 아이는, 내가 아는 가장 어린 산재 피해 유족이다. 태어나자마자 유족이 된 그 아이가 살아갈 나라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드는 날은 언제쯤 올까. 10년, 20년이 지나서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도 유족은 기자회견에 나서고, 책임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과 함께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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