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강원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재보완)와 관련해,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산양의 서식과 번식이 크게 교란될 것이라고 한국환경연구원 등 환경 전문기관들이 밝혔다. 2008년 2월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산양이 죽은 채로 발견된 모습. 연합뉴스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브이아이피(VIP·대통령을 뜻함)가 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면 환경부는 당혹스럽기 마련입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권합니다. 일단, 사업 검토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해라, 그리고 그 위원회의 구성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또, 구체적 안건을 다루기 위한 소위원회를 만들고, 그 소위원회의 구성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10여년 전, 환경부의 한 고위공무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거’라는 얘기였다.
그는 4대강 사업 광풍이 휘몰아치던 이명박 정부 때 환경부를 떠났다. 사석에서 “나름대로 막으려고 노력했다”고 항변했지만, 보시다시피 지금 낙동강은 녹조 범벅이다.
당시 퇴행한 환경정책은 4대강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 계획에도 불을 지폈다. 1980년 내장산국립공원 케이블카를 끝으로 자연훼손이 심한 개발 사업은 국립공원에서 안 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깼다.
수많은 위원회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2010년 환경부는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자연공원 삭도 설치 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케이블카 설치 시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다. 2015년에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가 강원도와 양양군이 설악산 오색지구에서 주능선까지 설치하겠다는 ‘오색케이블카’를 조건부 승인하고, 멸종위기종 산양 보호 등 7가지 부대조건을 내놓는다.
국립공원 개발 사업의 최종 관문은 환경영향평가다. 양양군은 드디어 이 문 앞에 도착했는데, 환경부는 한 차례 보완을 요구한 뒤 2019년 최종적으로 ‘부동의’했다. 부동의는 “(케이블카) 사업을 축소·조정하더라도 자연 생태계의 변화가 현저하거나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환경부가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양양군은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환경영향평가(재보완)를 내고 다시 문을 두들겼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환경부 고위공무원의 버티기 전략이 실패했다고만 할 수 없었다. 엄격한 가이드라인이나 부대조건을 붙여 10년 넘게 시간 끌기에 성공했고, 최종 관문에서는 소신껏 ‘아니오’라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현장에서 싸운 환경운동가의 눈에는 미흡해보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설악산이 여태 무사한 데에는 소신껏 일한 공무원들의 지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오색케이블카가 절대 안 되는 이유는
설악산이 뚫리면 다 뚫리기 때문이다. 예정 지역은 국내 자연환경 중 핵심 중 핵심이어서, 이곳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다른 국립공원에도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 현재 케이블카가 논의되는 국립공원은 설악산 말고도 지리산, 소백산, 북한산, 속리산, 무등산 등 5곳에 이른다. 환경단체 생태지평의 명호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특정 지역의 개발 논란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국립공원을 포함한 보호지역 관리 정책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태로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환경부가 느끼는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다. 지난 10일 김진태 강원도지사와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사업이 반드시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고 말했다고 <강원일보>는 보도했다.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의 법정 기한은 다음달 3일이다. 그날까지 환경부는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종합해 가부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환경부에 검토의견을 낸
5곳 전문기관의 의견서는 모두 부정적이다. 특히, 한국환경연구원은 소신껏 의견을 밝혔다. “양양군이 제시한 보전 대책으로는 자연환경의 최우선 보전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경우, 멸종위기종 산양을 교란할 가능성이 너무 커서 상부 정류장의 구역을 재설정하라는 권고도 있었다. 종합하건대, 현재 케이블카 노선은 안 된다는 얘기다.
환경연구원 부원장 출신인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여러 차례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토할 자료는 다 나왔고, 이제부터 환경부 장관의 시간이다. 그간 환경부의 노력과 위태했던 정체성도 한번에 부정당할 수 있는 시험대에 섰다. 국립공원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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