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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우진의 햇빛] 날씨에 돈을 걸다

등록 2023-03-05 18:23수정 2023-03-06 02:37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일 오전 두꺼운 복장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일 오전 두꺼운 복장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입춘이 지나면 봄이 문턱에 와 있다고 기대하지만, 바깥 날씨는 아직 겨울을 가리키는 때가 적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나 춘분은 지나야 제대로 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절기는 때맞춰 찾아오지만,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 연약하게 매달린 대기는 천체의 질서를 애써 외면하듯 시간 약속을 수시로 어겨가며, 겉보기에 닮은 듯하지만 속 다른 천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꽃샘추위가 찾아오면, 역주행하는 날씨가 빚어낸 해프닝에 사람이나 나무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꽃샘추위는 햇빛이 대지를 깨우는 계절의 흐름과 아무 때고 지나가는 온대저기압의 주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지며 일어난다. 온대저기압이 접근할 때는 남풍이 불어 기온이 한껏 오르며 나무는 꽃망울을 터트리지만, 저기압이 지나갈 때면 차가운 북풍이 내리꽂으며 꽃들은 맨살로 시샘하는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틈만 나면 규칙을 벗어나려는 대기의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에, 이듬해 봄이 올 때 어느 시점에 꽃샘추위가 닥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얼마나 매섭게, 몇 차례나 지나갈지도 미리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식물은 오랜 세월 진화해오면서 자연의 변덕을 무디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겨울에 꽃봉오리를 내민 봄꽃나무들은 온대저기압이 지나갈 때마다 등락하는 기온 값에 즉각 반응하는 대신, 몇 차례 기온 파동을 겪으면서 기온 누적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때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래서 일시 기온이 큰 폭으로 올라서도 연이어 찾아올 추위를 염두에 두고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해에는 때 이르게 개나리가 피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벚꽃이 늦게 피어 미리 준비해 둔 축제 행사를 맥 빠지게 한다. 계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때마다 기후가 달라진 건 아닌지 온난화 전조를 의심하기도 하고 날씨가 이상해졌다고 푸념하기 일쑤다. 초목은 자연에 순응하며 그 리듬에 맞춰 춤출 뿐이지만, 사람들은 인위적인 잣대에 맞추어 살다 보니 기상 변동이 일어날 때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지난겨울만 하더라도 한파가 자주 내습한 데다 원자잿값이 크게 올라 전기 가스업계는 순익이 줄었지만, 생활 보온용품이나 패션업계의 방한 의류 매출은 급증했다.

기후 변동성에서 비롯한 소소한 위험을 덜기 위해, 기업들은 금융자본에 눈을 돌렸다. 1998년 캐나다 봄바디어 회사는 눈썰매 구매자에게 파격적인 판매조건을 내걸었다. 겨울 시즌에 눈이 많이 오지 않으면 천 달러를 구매자에게 되돌려준다는 거다. 엔론사와는 이면계약을 맺어 일정 프리미엄을 내는 대신, 날씨가 변심했을 때는 엔론사가 대신 구매자에게 환급해주기로 했다. 날씨에 돈을 거는 내기는 기온에서 다른 날씨 요소로 계속 확장하는 추세다. 이를테면 과수원 수확량은 서리에 민감하고, 스포츠 매표량은 강수에 예민하므로, 상응하는 날씨 지표를 반영한 파생상품을 구매하여 경제적 손실의 위험을 분산하려 할 것이다.

날씨 파생상품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이상기상의 위험을 놓고 쌍방 간에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계절 기후전망은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혼재된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기후예측모델마다 계산해 낸 전망치가 달라, 이상 기상현상이 발생할 확률을 놓고 다양한 선택지가 널려있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따라 지구시스템의 불확실성이 개입하며, 기상통계 기준이 출렁이고 통계 분포의 모수를 추정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러다 보니 대기과학의 활용 역량에 따라 거래 쌍방 간에 지식의 비대칭이 손익의 틈새로 파고든다. 날씨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미래의 날씨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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