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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꺼이 뒷이야기를 드러낼 때

등록 2023-03-05 18:24수정 2023-09-21 18:12

지난 1월31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편집국 간부와 김만배씨의 돈거래와 관련된 사안이 논의됐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1월31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편집국 간부와 김만배씨의 돈거래와 관련된 사안이 논의됐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열린편집위원의 눈] 민경연 | ​취업준비생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책을 사고 나서 가장 먼저 어떤 페이지를 펼치는지 궁금하다. 나는 우선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살핀 다음 맨 뒤 후기부터 읽는다.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습관처럼 자잘한 것들을 궁금해하는 편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번역서라면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와 같은.

그런 습관 때문일까? 신문을 볼 때도 기자들이 취재 과정과 그 과정에서 했던 생각을 이야기하는 칼럼을 눈여겨보게 된다. 특히 ‘슬기로운 기자생활’을 유심히 읽는다. 실내마스크 착용 해제 당일, 취재 전 생각했던 ‘그림’과 마주한 현실이 달랐다는 고백면접장에서 썼던 별명 ‘믹스(커피)’처럼 기사에 개개인의 삶 속 이야기를 녹여내겠다는 다짐에서 기사엔 직접 적혀 있지 않은 기자들의 고민과 진심을 느낀다. ‘입진보’라는 표현을 돌아보는 편에서는 함께 고민하며 한겨레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뭘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기사를 다시 보면 기사 속 기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진다. 단순히 기사 내용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성원 개개인이 지향하는 가치에 공감하게 된다.

이렇듯 ‘뒷이야기’는 독자와 제작자의 심적 거리를 좁히는 매우 매력적인 소재다. 제작 과정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채워주고 더 나아가서는 공감과 감동까지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뒷이야기는 더는 뒤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태여 텍스트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려 짧게 실린 후기를 뒤적거리지 않아도 스스로 뒷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연예인 뒤에 머물던 매니저의 업무에 주목한 예능, 취재 과정을 통째로 유튜브 중계하는 매체, 사회적 껍데기 안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겠노라는 개인들의 브이로그까지 거대한 메이킹 필름의 시대가 찾아왔나 싶을 정도다. 자연히 제작자와 수용자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다.

가까워진 거리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언론에는 일종의 기회일 테다. 언론사 취업준비생이라면 한 번쯤은 펼쳐봤을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는 투명성의 원칙이 나온다. 투명성은 언론에 냉소하고 불신하는 독자들을 설득할 열쇠가 된다. 취재원 실명과 선정 과정을 비롯한 취재 과정의 투명성, 기사 선택과 편집의 투명성, 모르는 것에 대한 투명한 고백이 투명성을 이루는 근간이다. 작정하고 드러내는 ‘뒷이야기’가 신뢰의 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고민을 통해 나온 기사인지, 어떤 방법으로 취재했는지 더 깊은 뒷이야기가 필요하다.

책은 취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뉴스가 생산되는 편집국의 의사결정 방식을 공개하거나 이미 일어난 오류를 드러내고 반성하는 것 역시 투명성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얼마 전 한겨레 기자와 김만배의 금전거래에 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됐다. 조사 결과는 ‘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 보고서로 갈무리됐다. 80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해당 기자의 실명을 밝혔다. 거래 과정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한겨레 시스템이 노출한 문제와 기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까지 폭넓게 짚었다. 물론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를 인정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독자는 완전무결한 신문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건 애초 어디에도 없다. 대신 어두운 ‘뒷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기꺼이 고치려 하는 모습을 원한다. 실수의 흔적이 인터넷에 두고두고 남아 공격의 빌미가 되는 지금, 기꺼이 실수를 내보이고 반성하겠다고 말하는 한겨레이기에 독자 입장에서 다시 한번 지켜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한겨레의 뒷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한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8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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