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부족 진단과 해법’ 연속기고 ③] 김윤 |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의사가 부족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지방은 의사가 더 부족하다. 서울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3명인데 도 지역은 1.6명에 불과하다. 의사가 부족하니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중환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응급환자는 거리를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친다. 대도시에 비해 도 지역의 입원환자 사망률은 1.2배, 중증응급환자 전원율은 2배 더 높다. 최근 지방 병원에서는 연봉 4억원을 제시하고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흔히 교육·생활 여건이 떨어지는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방에도 의사가 일하기 좋은 병원, 큰 병원을 만들면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100병상당 전문의 수를 비교해보면, 광역시 14명, 도 지역 13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도 지역에도 큰 병원을 세워 전문의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 의사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00~5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은 돼야 의사들이 전문의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중환자를 진료하거나 수술할 때 다른 분야 전문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도 지역 종합병원과 병원에 근무하는 인구 1천명당 전문의 수가 7명으로 광역시(11명)보다 적은 이유는, 도 지역에 큰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 큰 병원이 있어야 한다니, 인구가 적고 환자가 없는데 운영이 되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대도시보다 지방에 병상이 더 많다. 큰 병원이 없는 의료취약지 17개 중진료권 중 절반 이상이 서울보다 인구당 병상 수가 더 많다. 아무리 인구가 적은 의료취약지라도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2~3개를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환자 수요는 존재한다. 정부가 병원을 만들지 않고 의사들이 돈 벌어 병원을 짓도록 하니, 큰 병원은 부족하고 작은 병원만 넘쳐나는 것이다.
의사들은 건강보험 수가(진료비 가격)를 올려 지방에서 근무하려는 의사에게 월급을 더 많이 주면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자료를 분석해보면 단순히 월급만 더 준다고 지방에서 일할 의사가 많이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서울 의사 급여를 100으로 했을 때 도 지역 의사 월급은 2010년 105에서 2020년 117로 높아졌지만, 도 지역에 근무하는 의사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 서울 대비 도 지역 의사 수는 2010년 56%에서 2020년 60% 수준으로 4%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을 뿐이다. 들인 돈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래도 월급을 더 많이 주면 지방에서 일할 의사가 많아지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건강보험 수가를 더 인상해 의사 월급을 더 올려주는 것이 적절한 해결책일까?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같은 잘사는 유럽 국가 의사보다도 수입이 많다. 의사 수입을 외국과 비교할 때는 근로자 평균소득 대비 의사 수입이 몇배인가로 비교하는데,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4.5~7.0배로 오이시디 가입국 평균의 2배 수준이다. 만약 우리나라 의사 수입이 오이시디 가입국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국민 병원비 부담은 연간 8조~10조원가량 줄어든다.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는 이미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의료체계를 정비해 지방에서도 의사들이 진료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거점병원을 300병상 이상 규모로 확충하고, 큰 부담 없이 중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대학병원 진료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역거점병원 의사에게도 대학병원 교수처럼 연수 갈 기회를 줘야 한다. 3년 뒤부터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유명 대학병원들의 수도권 분원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 지방병원 의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지방 의료체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