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10·29(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 추모 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소전 의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서혜미 | 이슈팀 기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경험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30대가 된 뒤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인의 친인척 빈소를 찾다가, 내가 유족이 되기도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남겨진 사람의 머릿속에는 평행우주가 생긴다. 그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세상이다. 살면서 크고 작은 일에 맞닥뜨릴 때 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을 상상한다. 눈이 오면 눈을 구경하고, 꽃이 피면 나들이를 가는 등 소소한 계절의 변화를 함께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된 자식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참석해야 했다. 아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 기쁜 마음으로 사회를 보거나 축가를 불러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49일째였던 지난해 12월16일 해밀톤호텔 뒤편에서 열린 시민추모제에서 유족들이 낭독한 편지에는 이렇게 너무나 당연했을 미래가 담겨 있었다. “내 곁에 자식이 없는 세상은 단 한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침엔 힘내서 잘 가라 울며 기도하고, 밤에는 보고 싶은데 왜 없냐고 울면서 찾고 있다”는 말에 내 마스크도 축축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회적 참사처럼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의 경우엔 그 고통의 강도와 지속 기간은 더하다. 미담보다 사건·사고 기사를 많이 쓰게 되는 만큼, 기자가 만나는 유족은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재난·범죄·사고뿐 아니라,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타인의 가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다수다. 이런 방식의 사별은 여러 해가 지나도 남은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학교폭력 피해로 8년 전 자녀가 숨진 뒤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유족을 이달 초에 인터뷰했을 때, 그는 스치듯 “삶에 별 미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계속 확인하면서 생사 여부를 파악한다.
사별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변 반응이 삶의 의지를 꺾게 되는 요인이기도 했다. ‘정해진 팔자가 있다’는 사주팔자론, 종교가 있는 경우 ‘망자의 고통은 끝났고 신의 품에서 행복할 것’이라는 기적의 행복회로론은 물론 ‘당신은 뭘 하고 있었느냐’는 유족 책임론을 듣기도 한다. 고인을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된 시기, 심지어 빈소를 찾은 조문객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었다.
시일이 지났다고 상처가 덜한 것은 아니었다. 사건 초기엔 여러 사람이 슬픔에 함께하다가도, 유족의 요구사항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유족은 이런 반응을 접하게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느냐’며 이제 그만하자는 말을. 고인이 없는 자신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하자는 말이다. 가습기살균제·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대응 공식이다. 지금도 매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족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외 트라우마 연구 전문가들은 재난, 재해, 갑작스러운 죽음 등 심리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에는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희생자와 유족이 충분히 사회의 존중을 받고, 참사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며, 많은 사회 구성원이 애도에 동참하는 일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도 힘드냐’, ‘이제는 잊고 새 삶을 살아야지’라는 일방적 태도로는 어떤 회복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하루아침에 자신의 세상이 무너진 이들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무심한 말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산 사람을 살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스스로와 주변에 질문을 던질 것인가. 사회의 비극을 대하는 우리의 윤리는 후자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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