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초년 기자 시절, 법원과 검찰을 출입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법조는 ‘빡센’ 출입처였다. 취재 경쟁이 치열해서 물 먹고(낙종) 물 먹이는(특종) 일이 다반사였다. 출근길에는 버릇처럼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 가판대에서 조간신문 1면을 훑어보곤 했다. ‘오늘은 또 뭘 물 먹었나’ 마음을 졸이면서. 1면 머리기사로 물을 먹은 날엔 출근길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3년간 법조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기사 압박이었다. 대형 수사가 진행중일 때면 회사에서 1면과 안쪽 주요 면을 비워 놓은 채 뭐라도 써서 보내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검찰의 공식 브리핑은 대체로 영양가가 없었다. 단독 기사를 발굴하거나 수사 흐름을 잘 짚어주는 분석 기사를 쓰려면 비공식적인 취재가 필요했다. 기자들이 검사들한테서 귀동냥이라도 해보려고 애면글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검사의 한마디’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검사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기자들의 전화만 가려 받았다. 정말이지 그때는 내 전화를 받아주는 검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기자들 사이에선 간혹 어떤 검사가 특정 언론사 기자와 친해서 수사 정보를 흘려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런 검사 하나 없는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그 ‘검사의 한마디’를 맹신하다 검찰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법조 취재·보도 여건과 관행은 거의 그대로인 것 같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 2020년에 쓴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 논문에 담긴 법조 출입 기자들의 ‘자기 고백’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법조 기자들은 박 연구위원과의 심층인터뷰에서 법조(특히 검찰) 취재·보도 실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매일 아침 시험 답안지를 체크하는 기분’ ‘법조는 얼굴장사를 하는 곳’ ‘주류 매체가 아니면 거의 취재가 안 되는 출입처’ ‘검찰의 말에 대해서는 무의식중에 신뢰’ ‘작은 티끌 하나를 가지고 부풀려 쓰기’….
시사주간지 <한겨레21>도 지난달 법조 기자 20여명을 인터뷰해 법조 취재 관행을 주요 기사(
‘검찰에게 서서히 가스라이팅되어가다’)로 다뤘는데, 이 기사에서 법조 기자들이 내놓은 진단도 박 연구위원의 논문과 큰 차이가 없었다. 모든 것이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법조 취재 관행은 세월이 흘러도 어쩜 이렇게 그대로일까 의아할 지경이다.
‘검찰 편향’ 법조 기사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음에도 낡은 취재·보도 관행이 굳건히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언론사들이 담합해서 ‘친검’ 성향의 기자만 골라 법조에 배치할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법조 기레기’가 문제라고 비난하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기자들에게 낡은 관행을 강요하는 뉴스 생산 구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검찰발 기사의 몸값을 너무 후하게 쳐준다는 점이다. 독자와 시민에겐 별로(때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티끌 만한’ 것이라도 ‘단독’이면 일단 기사를 키우고 본다. 1면에 검찰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1면 기사로 몇번 물을 먹으면 아무리 맷집이 좋은 기자라 해도 버티기 어렵다. 이러니 너 나 할 것 없이 ‘단독’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기실 그 ‘단독’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검사의 한마디’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 기사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정치가 해결해야 할 일을 죄다 검찰로 끌고 가는 ‘정치의 사법화’ 탓도 크다.
기사 압박이 심한 것도 낡은 관행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큰 수사가 진행중이면 지면을 비워 놓고 기사 써 보내라고 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 같다. 쥐어짜기 식으로 기사를 써내야 하니 언론 본연의 책무인 교차 검증은 언감생심이다. 확인도 안 된 기사를 그냥 ‘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밀행성’을 유지해야 하는 수사의 속성상 검찰과 기자 사이에는 ‘정보 비대칭’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검사의 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독’ 경쟁과 기사 압박에 내몰리게 되니 ‘검찰 편향’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검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검찰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될 개연성도 크다.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기사 쓴다’는 세간의 비판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이서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조교수는 검찰을 맹목적으로 인용하는 보도 관행에 대해 “언론이 검찰에 의해 작업 당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지난 7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언론과 권력’ 세미나)
법조 보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은 이제 위험 수위에 이른 것 같다. 지난달 말 열린 한겨레신문사 주총에서도 주주들은 ‘법조 카르텔을 그냥 둘 거냐’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겨레>도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뉴스룸국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오랜 관행을 깨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겨레>는 반드시 길을 찾을 것이다.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