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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살자 얘들아, 그럼에도”

등록 2023-04-27 18:44수정 2023-05-08 10:48

슬기로운

기자생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우연

정치팀 기자

부모님이 속상할까 봐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한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취업준비생 3년차 때 얘기다. 앞서 수많은 언론사 시험에서 낙방했지만, 한 회사의 최종면접 탈락은 유독 타격이 컸다. 그 회사는 그해부터 실무평가와 최종면접 사이에 2주짜리 인턴 전형을 추가했다. 인턴 평가에서 만난 선배들은 나를 마치 신입사원처럼 대해줬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그 시절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수십년을 더 산 어르신들의 “나도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살 만하더라”는 말이었다. 마음은 감사했으나, 내가 겪고 있던 현재의 괴로움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한때의 시련’으로 치부하는 소리를 듣다 보니 “힘들다”는 말조차 망설여졌다. 채용 탈락 뒤 다가온 계절이 마침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봄이었다는 점은 더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도 몇몇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음을 고쳐먹어 구렁텅이에서 탈출했고, 지금은 동료들과 회사에 얽매인 처지를 한탄하는 직장인이 됐다. 다시 그때의 감정을 떠올린 것은 올봄 청년들의 연이은 죽음 소식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하던 10대가 고층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는 등 닷새 사이 서울 강남에서만 중고생 세명이 숨졌다. 여기에 아이돌 그룹 멤버가, 전세사기 피해 청년들이 잇따라 사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알려진 30대 네이버 개발자와 농협 직원 사망 소식도 들려왔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쬘 때마다 끔찍했던 그 봄이 떠올라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 죽음들은 한 개별적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나락으로 밀려 넣어지는 익명의 흐름처럼 보였다.” 김훈 작가가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명단을 실은 몇해 전 <경향신문> 1면을 보고 한 말이다. 올봄에 쏟아지는 청년들의 자살 보도를 보며 이 구절이 떠올랐다. 자살이 특정 세대만의 현상은 아니나, 통계청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새(2016~2021년) 자살률 증가폭은 20대(43.94%), 10대(24%), 80대(11.52%), 60대(9.42%) 순이었다. 2021년 기준 10~30대 사망 원인 1위 역시 자살이었다. 사회가 젊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세상은 조용하다.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나 역시 권고를 따르려 노력했으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들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써버리고 말았다. 사실 사망한 청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세상을 등진’ 게 아닌데 말이다. 무엇보다 이 경우 주어를 바꿔 서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그들을 잃었다고. ‘선택’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어쩌면 그 뒤에 숨어서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 아닐까. 생각의 가지가 두서없이 뻗쳤다.

최근 일본은 총리 직속 ‘어린이가정청’을 출범시키면서 그 산하에 아동과 청소년 자살 대책을 담당하는 10명 규모 부서를 신설하고, 오는 6월 다른 부처와 함께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현재 살아 숨 쉬고 있는 자들의 죽음을 예방하는 게 저출생 대책이기도 하다는 관점이다.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 21일 ‘자살위기극복 특별위원회’ 회의를 열고 자살과 관련한 부정적 정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본질에 관한 대책은 아닌 듯하다. 오늘도 에스엔에스(SNS)를 켜면 “살자 얘들아, 그럼에도”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다독이는 청년들의 절규가 보인다. 적어도 나는 이들에게 “그래도 살아 보니 괜찮더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음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완곡한 표현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안다. 이 절규에 정부가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 아니 내놓을 생각은 있는지 궁금하다. azar@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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