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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리는 코다입니다

등록 2023-06-14 19:30수정 2023-06-15 11:13

6월29일~7월2일 인천에서 열리는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 포스터. 미국 비영리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과 한국의 비영리 스타트업 코다코리아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코다코리아 제공
6월29일~7월2일 인천에서 열리는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 포스터. 미국 비영리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과 한국의 비영리 스타트업 코다코리아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코다코리아 제공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이제부터 그룹을 나누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통역사 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모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줌) 회의실에서 적은 수 인원이 모여 대화하는 소규모 회의실로 옮겨졌다. 이윽고 화면에 코다인터내셔널의 대표 애비의 얼굴이 떴다. 애비는 미국인 농인 부모로부터 수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는 미국 음성언어인 영어를 배운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자녀)다. 애비와 내가 가지고 있는 공통 언어는 영어다. 우리는 평소 영어로 대화하고 영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펴서 숫자 2를 의미하는 기호를 만들었다. 애비의 얼굴이 떠 있는 모니터 화면과 나 사이에 오른손으로 만든 숫자 2를 왔다 갔다 하며 궁금하면서도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검지로 아래 방향을 가리켰다. ‘여기’ ‘이곳’이라는 뜻이었다.

“당신과 나, 둘만 여기에?”

애비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펴서 숫자 2라는 기호를 만든 뒤 모니터 화면과 그의 몸 사이 공간을 메웠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수어와 제스처를 통해 소통했다. 서로의 공통 언어인 영어를 사용해도 ‘통역사 없이 대화할 것’이라는 조건은 충족시켰지만, 애비와 나는 수화언어라는 모어를 선택했다. 애비는 미국 수어를 사용했고 나는 한국 수어와 몇가지 알고 있는 미국 수어를 동원했다. 시각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한 단어를 선택하여 제스처로 사용했다. 그는 A를 뜻하는 지문자, 검지의 머리가 왼쪽을 향하게 둔 채로 주먹을 쥐고 양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수어 이름이라고 했다.

“아버지, 낳다, 나, 이름, 모르다, 생각, 없다, 고민, 손으로 펼치다, 신문, 좌우로 읽다, 발견, 내 이름, 애비.”

맥락상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미국 수어로 ‘아버지’와 ‘이름’이라는 단어를 배웠기에 이름의 유래라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낳았을 때 문자언어로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 신문을 들여다본 끝에 발견한 단어가 자신의 이름이 되었다는 일화였다.

나는 그림과 수어, 제스처를 동원했다.

“내 이름, 보라, 한국말. ‘보다’라는 뜻. 우리 엄마, 아빠는 눈으로 보는 사람. 나, 보라.”

애비는 너무 잘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비와 보라, 모두 받침 없는 짧고 간결한 이름이었다. 농인이 발음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 문자언어로 된 이름을 지을 때 어디서 이름을 가져오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다른 코다들에게 어떻게 대화했는지 물으니 우리처럼 수어와 제스처를 사용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는 그림이나 사진 같은 이미지를 사용했고, 번역기와 채팅창을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사회자는 이것이 바로 시각문화와 청각문화를 오가며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코다의 문화이자 언어라고 말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과 한국 코다들의 네트워크인 코다코리아가 공동 주최하는 ‘2023 코다국제콘퍼런스’ 준비 모임의 모습이다.

이처럼 수어와 음성언어를 사용하고 농문화와 청문화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코다들의 축제, 코다국제콘퍼런스가 2023년 6월29일부터 7월2일까지 한국 인천에서 개최된다.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전세계에서 모인 코다 150여명이 ‘다채로운 코다’라는 테마 아래 코다의 정체성과 문화를 나눌 예정이다. 오래 준비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계 곳곳의 코다들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7년 전 “나는 코다다”라고 선언하며 시작한 연재를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이름으로 마친다. 코다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고 벅찼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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